[엄상익 칼럼] 빨간쟈켓에 백구두 신은 수행자
고희기념 여행 중 한 친구가 전화를 받고 이런 말을 했다.
“고교동기인 그 친구가 이번에 한전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말이 도는데 확인해 달라고 하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인 것 같다. 한전 사장으로 거론된다는 친구는 교수를 하다가 국회의원을 지낸 친구였다. 권력이나 자리는 마약의 쾌감같다고들 한다.
영향력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명함에 쓸 직책이 끊어지면 공허해지나 보다. 대법관을 지내고 대학 교수로 지내던 군대 동기가 다시 변호사를 개업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사회와 연결되는 탯줄이 끊어지면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가 보다. 습관 같은 마음의 탯줄도 있는 것 같다.
늙은 변호사 중에는 의뢰받은 사건이 없어도 매일 텅빈 사무실에 출근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경우도 봤다. 인간은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에 마음이 묶여 있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공간에도 묶여있다. 이제는 더 이상 서울에서 살 이유가 없어도 서울을 벗어나면 2등시민 3등시민이 될 것 같다는 걱정에 묶여 서울을 탈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제는 북한산 자락에서 혼자 사는 친구가 카톡으로 글을 보내왔다. 그는 글에서 한 인터뷰 영상에서 보았던 태아와 신생아 얘기를 전했다.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 오로지 탯줄 하나에 의존해서 생명을 이어간다. 하지만 신생아로 태어나면 그 탯줄은 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탯줄을 끊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넜으면 그 배를 버려야 한다는 불교의 얘기도 덧붙였다.
친구는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는 남은 인생이 짧다는 걸 자각하고, 사회적 탯줄을 잘라버렸다고 했다. 퇴임한 그룹에서 배려해 준 사외이사나 초빙교수직을 모두 사임했다고 했다. 은퇴와 노화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내기 위해 마음의 탯줄도 잘라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요즈음 ‘뭣이 중한디?’라는 질문의 답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5년 전 그의 집 마당에 심은 자작나무 서른 그루 얘기를 인용했다. 심을 때는 비슷한 크기와 모양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유난히 굵게 큰 녀석이 있다고 했다. 그 집 마당이 북한산 바람이 지나가는 길인데 첫 바람을 온 몸으로 받은 녀석이 가장 튼실하게 컸다고 했다.
재벌그룹의 교육책임자로 사원들을 관찰하다 보니까 사람도 비바람을 맞으며 견뎌온 이가 큰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수많은 직원들을 교육시키면서 느낀 철학인지도 모른다. 그는 무성해진 큰 나무는 과감히 가지치기를 해서 뿌리와 몸통만 남겨둔다고 했다. 그 밑에 있는 작은 나무들이나 화초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의 삶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말하기 위한 것 같았다.
그는 요즈음 자신의 삶에서 덜 중요한 걸 가지 치면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한다. 내게 글을 보낸 그 친구는 비슷비슷한 묘목같이 보였던 고교 시절에도 나의 눈에는 품종이 달라 보였다.
반장이었던 그는 사고가 깊고 행동도 묵직했다. 대학 시절 그는 운동권인 것 같았다. 사회에 대한 구조적 인식이나 이념적 지향이 시대의 흐름을 앞서갔다. 그는 시민운동의 중추역할을 하면서도 경력을 팔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자와 빈자의 이분법적 분류에 휘말리지도 않았다.
선한 부자를 인정하고 대중의 교활성과 이기심도 날카롭게 보고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자기가 설정한 경계선의 길을 따라 칠십 고개까지 자유롭게 잘 살아온 것 같다. 20년 전쯤 그를 봤을 때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다. 전형적인 모범생 내지 신사의 모습이었던 그가 어느날 광대의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수들이 입는 게 맞을 듯한 반짝거리는 빨간 쟈켓에 끝이 뾰족한 백구두를 신었다.
거기에 독특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삶을 가지치기 하고 마음의 탯줄을 자르니까 마주한 세상이 새롭게 보이면서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했다. 새로운 기운으로 새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빨간쟈켓에 백구두를 신은 수행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