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50억클럽’과 ‘참회한 악마’ 오헤어 변호사 부자

박영수 특검

언론에 ‘50억 클럽’이란 말이 떠돈다. 거액의 댓가를 받는 변호사들을 말한다. 변호사에게 거액의 돈은 어떤 때 들어올까? 정의로운 일을 했을 때 받는 돈일까? 내가 아는 한 검사장은 재벌 회장의 입건을 유예해주고 거액을 받았다고 했다. 그건 부자의 죄를 덮어준 데 대한 댓가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왔다.

나도 그런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 한 회사의 오너가 거액을 가져왔다. 자기가 저지른 밀수행위를 덮어달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희생양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회사 직원이 법적책임을 떠안고 구속되어 있었다. 그는 이미 검찰과 언론을 매수해 놓고 있었다. 그게 안심이 안됐는지 내가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친하다는 걸 알고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 입장에서는 횡재의 기회였다. 담당 검사나 부장검사가 진실에 눈을 감고 그 사장을 이미 봐줄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업의 오너를 대신해 감옥에 들어간 자재부장의 아내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오너에게 충성해온 남편은 감옥 안에서도 사장님만 믿고 있는데 자기는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양심을 가시가 찌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돈의 위력은 대단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돈을 돌려주기 싫었다. 속에서 두 개의 내가 싸우기 시작했다. 착한 나는 그 돈을 돌려주고 그들의 음모를 폭로해 버리라고 했다. 악한 나는 모르는 척하고 그 돈을 받으라고 했다. 변호사가 원래 그렇게 사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 사장의 부하는 내가 맡은 의뢰인도 아니라고 속삭였다.

그래도 매일같이 양심이 아팠다. 양심이란 내 속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우뢰소리였다. 큰 돈은 악마의 낚시미끼고 함정이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돈을 돌려주기로 마음먹고 그 사장을 부른 현장에서 내 입은 전혀 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주저하다가 가까스로 그 돈을 돌려주었다.

순간 그 사장은 아무 힘도 없는 새끼가 사기를 친 것 같다고 욕을 했다. 마치 그 자신이 피해자같이 길길이 뛰었다. 변호사사회는 돈이라는 악마의 다스림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법치국가고 변호사 천국이라는 미국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알 카포네는 밀주매매, 매춘, 살인으로 미국의 서부까지 영향을 미치는 갱단의 두목이었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아인슈타인, 헨리포드와 함께 시카고 젊은이들의 우상까지 됐다. 한해 수입이 많은 걸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당시 ‘오헤어’라는 인물이 알 카포네의 집사변호사였다. 그는 해박한 법률지식과 능수능란한 수완으로 카포네의 잔인하고 악랄한 범죄를 숨기고 감옥행을 막아주었다. 알카포네는 거액의 변호료뿐만 아니라 하인까지 딸린 성채 같은 저택에서 부자로 살게 보장해 주었다. 그 저택은 시카고 거리의 한 블록을 전부 차지할 정도였다.

오헤어 변호사는 그뿐 아니라 외아들이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를 누리고 살 수 있게 경제적 부를 이루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헤어 변호사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깊은 회의에 빠졌다. 돈의 노예가 되어 악독한 범죄에 연루된 더러운 삶이 후회가 됐다. 더러운 이름과 불명예를 아들에게 남겨주게 된 것이다.

그는 뒤늦게 아들에게 모범이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그는 결심했다. 그가 덮었던 흉악한 범죄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자신의 잘못을 자백함으로써 더러웠던 자신에게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럴 경우 치뤄야 할 댓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법당국을 찾아가 범죄사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그의 증언과 증거자료 덕분에 사법당국은 오랜 기간 잡지 못했던 범죄조직의 두목을 구속할 수 있었다. 시카고는 드디어 알카포네 일당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해가 끝나기 전 오헤어 변호사는 거리에서 온 몸에 총알 세례를 받고 삶을 마감했다. 아들 오헤어는 아버지의 피묻은 양복 주머니에서 십자가를 발견했다. 아버지 오헤어는 인생의 가장 큰 댓가를 치르고야 아들에게 ‘정의’라는 유산을 물려줄 수 있었다.

오헤어 중위

그 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오헤어 변호사의 아들 오헤어 중위는 전투기 조종사로 남태평양 렉싱턴 항공모함에 배치되었다. 어느 날 혼자 전투기를 몰고 모함으로 돌아가던 오헤어 중위는 일본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저고도로 날아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군 전투기들이 모조리 출격해 모함은 거의 무방비상태였다. 모함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고 알려도 소용없는 긴박한 상태였다. 그는 단독으로 일본 비행편대를 향해 하강해 기관포를 내뿜었다. 그는 적의 전투기들 사이를 누비며 탄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적기에 총탄을 퍼부었다.

마침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렸다.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 승선해 있던 장병 2800명을 구한 것이다. 오헤어 중위는 훈장을 받고 그 1년 후 한 공중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다.

시카고 시민들은 그 전쟁영웅을 기리기 위해 시카고의 공항에 ‘오헤어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아버지 오헤어 변호사가 목숨을 걸고 정의감을 일깨워주었던 외아들이었다. ‘50억 클럽’에 속한 변호사들은 마음이 편할까? 아들에게 돈이 아닌 정의감을 물려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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