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노인 냄새

“일본 요양원에서 일을 하다가 노인들마다 기저귀 부근에 센서가 붙어 있는 걸 봤어요. 배설물이 나오면 바로 센서가 알려줍니다. 그러면 요양보호사가 즉각 똥을 닦아주고 기저귀를 비닐봉지에 담아 밀봉을 합니다. 중국음식점 벽에 음식을 오르내리는 작은 엘리베이터처럼 일본 요양원도 그런 시설이 있어요. 거기에 배설물이 담긴 비닐봉지를 넣으면 바로 처리가 되는 거죠. 실내에 잠시도 배설물 봉지들을 두지 않았어요.”(본문 가운데) 사진은 일본의 노인 요양시설 <연합뉴스>

고교 동창들과 칠순맞이 일본 여행 중이던 지난 15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오전에 여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야마구치현을 향하고 있었다. 비에 젖어 흐려진 버스의 창 밖으로 짙은 숲이 지나가고 있었다. 기와를 덮은 나지막한 농가와 나무들이 축축하게 젖어 색이 깊어져 있었다. 버스에는 칠순 기념으로 같이 여행을 온 다섯쌍의 부부들이 앉아 있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나를 보며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새벽 노천탕에 들어갔는데 소나기같이 비가 오더라구. 일어서서 그 소나기를 머리로 맞았지. 좋더라구.”

법관을 오랫동안 한 친구였다. 항상 법리에 묶여있고 딱딱하던 친구가 서정적으로 변한 것 같다. 우리들의 여행가이드를 하는 서 선생이 그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부장판사를 했던 분이 왜 이러셔” 하면서 농담을 해도 유쾌하게 받아준다. 이제는 판사 냄새가 거의 다 빠진 것 같다.

그 뒷자리에 앉은 친구도 판사생활을 할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라졌다. 콧수염을 기르고 옷도 자유롭게 입고 있다. 오카리나를 배워 길거리에서 버스킹연주를 하고 있다. 그에게서 판사냄새가 완전히 빠지고 전혀 다른 부드러운 인간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노인들을 보면 나이 팔십이 넘어도 왕년의 직업에서 오는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노인은 아직도 장사꾼 냄새가 풀풀 났다. 90대 나이인데도 다른 노인을 실버타운에 소개했다고 리베이트를 달라고 요구해서 밉상이 된 경우도 있었다.

하급경찰관으로 지냈던 사람은 아직도 경찰 냄새가 빠지지 않은 것 같았다. 여행안내를 맡은 50대 중반쯤의 가이드 서 선생이 버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열심히 말을 한다. 가이드란 직업은 쉴새 없이 말을 해서 사람들이 심심해 하지 않도록 해야 하나보다.

“코로나로 3년동안 여행이 중단되어 제가 백수상태가 됐을 때 여기 일본에서 요양보호사를 했습니다. 노인들 똥을 치워야죠. 때가 되면 밥을 먹여야죠. 목욕을 시켜야죠.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요양원은 이상하게도 냄새가 없어요. 한국사람들이 일본의 요양원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를 물어요.”

노인이 되면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서울의 최고급 실버타운도 공기 중에 노인 냄새가 배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행가이드 서 선생이 요양보호사 알바 때 얘기를 계속했다.

“일본 요양원에서 일을 하다가 노인들마다 기저귀 부근에 센서가 붙어 있는 걸 봤어요. 배설물이 나오면 바로 센서가 알려줍니다. 그러면 요양보호사가 즉각 똥을 닦아주고 기저귀를 비닐봉지에 담아 밀봉을 합니다. 중국음식점 벽에 음식을 오르내리는 작은 엘리베이터처럼 일본 요양원도 그런 시설이 있어요. 거기에 배설물이 담긴 비닐봉지를 넣으면 바로 처리가 되는 거죠. 실내에 잠시도 배설물 봉지들을 두지 않았어요. 배설물에서 나오는 분자들이 공중에 부유할 시간을 주지 않는 거죠. 한국 요양원은 우선 센서가 없고 똥을 싸도 그냥 놔둡니다. 대개는 식사 후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일률적으로 기저귀를 갈아 채웁니다. 그 사이 똥오줌에 젖은 기저귀들을 차고 있는 거죠. 당연히 냄새가 진동하고 한두 사람이 아니니까 요양원 전체에서 냄새가 나죠. 그렇다고 간병을 탓할 수도 없어요. 한사람이 24시간을 돌보면서 먹이지 씻기지 똥치우지 낙상하면 묘하게 법적인 책임까지 지는데 그 사람한테 어떻게 더 바라겠어요? 그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드물어서 중국교포들이 그 일을 한다니까요.”

노인이 되고 나서 은근히 걱정되는 게 냄새다. 50여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그 주변에서 나는 냄새는 각지고 날이 서 있었다. 짓무른 살에서 나는 냄새는 거의 폭력적이었다. 가난한 집 한쪽 방에서 혼자 죽어가는 노인의 냄새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할아버지를 따뜻하게 돌보고 싶어도 그 냄새에 항복하고 말았던 회한이 남아있다.

나는 죽어가는 세포에서 나는 냄새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목욕을 하고 수시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손자가 올 때면 열심히 녀석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손자 손녀도 눈치가 있어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적 냄새가 풍기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전문적인 용어라도 상식적인 말로 풀어서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것 같이 넘겨짚을 때면 직업냄새가 많이 빠져나갔구나 하고 안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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