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학교폭력의 추억
“나 4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어.” 고교동창이다. 이름과 소년시절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얘기를 하거나 같이 놀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나에 대한 기억이 명확한 것 같았다.
“너하고 나하고 같은 밴드반이었어. 네가 나갈 무렵 내가 들어갔지. 너는 밴드반을 나갈 때 대걸레 자루로 스무대를 맞고 나갔다고 하면서 나도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때리더라구. 여덟대 맞고 나는 기절했었어. 때리던 상급생의 얼굴이 허옇게 되고 난리가 났었지.”
“맞아 나도 열대쯤 맞았을 때였어.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일어서서 그만 때리라고 했어. 그랬더니 다른 상급생 밴드부원한테서 주먹이 날아왔어. 그건 덤이었지. 잠시 쉬었다가 나머지 열대를 다 채우고 나왔어.”
나이 칠십인 우리는 학교폭력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웃었다. 나는 아무 응어리가 없다. 이빨같이 나란히 자기의 역할과 기능을 하는 밴드팀에서 나가겠다고 하면 그건 전체에 지장을 주는 행위였다. 당연히 그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때 잊혀지지 않는 더러운 기억이 하나 얼룩같이 남아있다.
나와 같이 드럼 파트를 맡았던 상급생은 독특한 성격이었다. 하얀 피부에 콧대가 오똑한 얼굴이었다. 교복도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게 입었다. 그는 여러 여학교의 뱃지를 모으는 별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모범생 같아 보이는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펜으로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등을 찔렀다. 그 시절 병속에 있는 잉크를 묻혀 쓰던 철펜은 흉기에 가까웠다. 잔인성이 있는 행위였다.
그는 자기말에 복종하지 않는 듯한 내게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밴드부원 전체 앞에서 나를 몽둥이로 때렸다.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면서 나의 둔부에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었다.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고 때리는 그 매는 내가 납득할 수 없는 폭력이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시청율이 높다는 <글로리>라는 학교폭력 드라마를 봤다. 고등학교 교사가 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놓고 본격적으로 여학생에게 사정없이 따귀를 때리는 장면을 봤다. 교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한마디를 한 탓이었다.
그걸 보는데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교사가 갑자기 내 마음속에 쳐들어 왔다. 그는 재벌집 아들의 과외를 하면서 시험때가 오면 미리 문제와 답을 알려주었다. 그걸 우연히 알게 된 나는 그에게 “그건 공정에 어긋난다”고 따졌다. 그 후 어느 날 저녁 나는 학교의 숙직실 뒤 공터로 끌려가 그에게 떡이 되도록 맞았다. 주먹과 발길이 날아왔다. 감정이 가득 담긴 폭력이었다.
그는 내게 “약점을 잡았다고 덤비느냐”고 물었다. 공정을 주장하려면 댓가를 치르어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침묵을 한다는 것도 알았고. 그 재벌집에서 동원한 조직폭력배가 학교에 있는 나를 직접 찾아왔다. 그가 나를 한참 살피더니 이런 말을 하고 돌아갔다.
“나쁜 얘기를 듣고 너를 손봐주러 왔는데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내가 학교 청부폭력 타켓의 시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재벌 아들의 칼에 맞아 40 바늘을 꿰맨 적이 있다. 얼굴이 야구공 같은 모습이었다. 칼이 경동맥을 긋고 지나갔으면 죽었을 것이다.
가해자측인 재벌 회장 부인이 가난했던 우리 집에 합의금으로 거액을 가져 온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핏값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껍데기가 아니라 속까지 꽉 들어찬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게 복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게 부자지만 정신연령이 낮은 그 아이를 불쌍하게 보고 용서하라고 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는 대학도 가고 고시에도 합격하고 대통령 직속의 권력기관에도 근무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내게 칼질을 했던 친구로부터 훗날 “정말 미안했어”라는 말을 들었다. 회장이 된 그로부터 형식적, 법적 합의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것이다.
변호사를 하다가 학교폭력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다. 가난한 외할머니가 키우던 중학교 아이가 교실에서 다른 아이에게 맞아 죽었다. 사람을 죽인 아이의 엄마는 사회명사였다. 나는 죽은 아이의 시체 사진을 본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서늘해졌다. 그 아이가 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은 아이의 표정은 너무나 순결하고 착해 보였다. 가해자인 아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 주먹 한 방에 죽은 걸 보면 내가 세긴 센 가 봐요.”
인성이나 정신연령이 낮은 아이 같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명사인 그 아이의 엄마가 방송에 나와 그때의 얘기를 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죽은 아이의 할머니를 찾아가 합의를 해서 아들을 빼냈다는 말에는 자랑기가 묻어 있었다.
뒤늦게 아들이 그때 일을 반성하고 전도사가 됐다는 게 다행이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들의 비뚤어진 악성이 어른 못지않다. 원한을 품고 성인이 되어 복수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복수는 자신의 영혼에 스스로 큰 상처를 입히고 삶을 피폐하게 한다.
십자가는 원수의 죄를 용서하면서 죽음을 당하는 상징이다. 때려 죽일 용기보다 맞아 죽을 용기가 더 무서운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