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아빠 찬스···”그들만의 리그”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곽상도 전 국회의원(오른쪽) <이미지 YTN>

10여년 전쯤 일이다. 아들이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인터뷰를 할 예정인 것 같았다. 그 며칠 후 아들이 풀이 죽은 채 이런 말을 했다.

“나 이제 어디 가서 아버지가 누구라고 밝히지 않을래. 그냥 생선장수 아들이라고 할래. 인터뷰를 했는데 그 회장이 가족란을 보고는 아버지를 잘 아는 눈치더라구. ‘인권변호사시지?’라고 말하는 데 비아냥기가 묻어 있더라구. 그 회장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 때문에 절대 안 될 거라는 걸 느꼈어. 사람들은 아버지를 폭탄으로 여기는 거 같아.”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 회장이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고교 동창이었다. 그 시절 논다는 부자집 아이들은 나를 싫어하고 경계하는 것 같았다. 재벌집 아들에게 내가 칼을 맞기도 했었다. 그 그룹의 하나였다. 아들의 운이 지독히 나빴던 것 같다. 아들에게 머쓱해지고 미안했다. 아들이 지원했던 회사의 회장이라는 친구가 고교시절보다 정신연령이 크게 높아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기저기 방송에서 ‘부모 찬스’라는 말을 들었다.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아버지 빽으로 들어간 기업에서 몇 개월 일하고 50억원을 퇴직금으로 받은 걸 보고 그런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예전에 한 신흥재벌 회장을 만났을 때 그가 내게 과시하듯 이런 말을 했다.

“권력을 이용하거나 인허가를 따는 가장 편하고 값싼 방법이 그 자식들을 채용해서 경영전략실에 두는 거지. 검사장 아들을 채용했어. 그 아버지가 어떻게 하겠어? 자진해서 나의 호위무사가 되어주는 거지. 국회의원 아들을 직원으로 두기도 했어. 내가 하는 개발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그 아버지가 어떻게 하겠어? 정말 앞뒤 가리지 않는 해결사가 되는 거지.”

그런 말을 하는 회장의 인식에 그들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솔직히 거의 비스켓을 던져주는 ‘똥개 수준’이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보수나 퇴직금 형태로 뇌물이 나가면 법망에 걸리지 않아. 우리 모두 법을 따져나가는 데는 선수니까. 받는 사람도 좋지. 상속세를 내지 않고 아들에게 돈을 물려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 걔들이 말을 잘 들으면 그 땅을 좀 비싸게 쳐서 미리 사주면 어떤 수사기관도 뇌물로는 절대 걸 수 없어.”

내가 보기에는 그런 개보다 못한 회장들도 이 사회에 많았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 빽으로 그런 회사에 취직하는 걸 부러워하면서 그걸 ‘부모 찬스’라고 하며 절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런 걸 전혀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불공정은 내가 살아온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사투를 벌여 겨우 명문학교의 작은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아빠 찬스를 가진 아이들은 어느 날 슬며시 전학 와서 옆의 책상에 앉았다. 교사는 그 아이 부모앞에서 절절 매며 그 아이를 반장 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대학도 그랬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우리는 시합을 했다. 볼은 그 아이들 앞으로 가곤 했다.

‘부모 찬스’를 누리는 아이들은 군대갈 무렵이면 병적서류에 ‘군 복무에 적합치 않은 건강’이라는 판정이 났다. 전방 철책부대에서 순찰 돌다가 서울에 왔을 때 룸살롱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부모 찬스’를 가진 재벌 아들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었다.

그런 게 세상이었다. 불공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의 말처럼 피보다 진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뭔가를 하려고 했다. 인생은 순간이 모여 성벽을 이루는 거니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세월이 칠십 고개를 넘는 소리를 들으니까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부모찬스’를 가졌던 친구나, 아닌 나나 마음속 행복의 총량은 같은 것이라고. 이류나 둘째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게 더 나은 지혜라고.

내 아들은 어려서 농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들을 마음에 두고 깊은 산 속에 작은 산을 하나 샀었다. 지금 잡목들을 모두 자르고 편백과 낙엽송을 심고 있다. 백화나무를 심어 벌들이 잉잉거리는 아담하고 단아한 농원을 만들 계획이다. 그 안에 돌로 쌓은 작은 예배당이 있으면 더 좋겠다.

대기업 문 앞에서 아빠 때문에 나뒹군 아들에게 내 식의 ‘아빠찬스’를 만들어 주게 해달라고 그분께 기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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