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박근혜 대통령 스타킹에 난 구멍

당 대표시절 선거 지원 유세 도중 피습당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그에 대한 정치 공세가 과연 온당했는지 역사는 재평가하지 않을까?

우연히 유튜브 채널을 돌리다가 청와대 대통령의 요리사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청와대를 나가시는 날이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인지 우리 주방사람들을 부르셨어요.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발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스타킹 엄지발가락 부분에 구멍이 나있더라구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박한 정신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은 숙소 변기의 물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 속에 벽돌 두 장을 집어넣어 두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무렵 유언비어들이 들끓었다. 그 중에는 대통령의 방이 아방궁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 뇌물사건에서 뇌물을 줬다고 기소된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다. 재판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방대한 조사기록을 세밀하게 읽었다. 그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청와대로 막 들어갔을 때였다.

대통령 숙소 방의 나무문짝이 뒤틀려 소리가 나고 잘 열리지 않았다. 대통령은 시설관리를 하는 직원을 부르지 않고 직접 양초를 들고 뒤틀린 나무 문에 문질러 문이 부드럽게 미끄러지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흔히 하던 작업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낯을 가리는 성격인 것 같았다. 기록 속에는 낯선 청와대 기사를 불러서 시키기가 껄끄러웠다고 한 부분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돈에 대해서도 결벽증일 만큼 철저한 것 같았다. 재벌이나 부자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여성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옷이었다. 협찬하고 싶은 브랜드가 줄을 지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옷을 전속으로 만들 사람을 선택했다. 보통 사람이었고 그가 쓴 재료들을 보면 평범한 것들인 것 같다. 대통령 월급통장에서 그 옷값이 또박또박 지불되어 나간 걸 봤다.

옷을 만드는 사람이 부르는 옷값이 비싸 월급으로 미처 다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대통령이 가장 더러운 뇌물죄로 재판을 받고 오랜 징역을 살았다. 왜 그랬을까.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지낸 한 분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매일 야당의원 한 사람에게 전화 한 통씩만 했다면 파면되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런 전화를 했었다면 야당 의원은 대통령이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했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그걸 마음 속으로 깊이 간직하고 도왔을 거야. 그게 대통령의 중요한 정무라고 생각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이 한 일이 뭔지 알아? 매일 국회의원한테 전화를 한 거야. 르윈스키와 섹스를 하고 있을 때도 국회의원과 전화를 하는 중이었어.”

그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재판 때 변호를 맡은 한 변호사는 황송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저에서 차를 보내셨길래 그걸 타고 가서 만나뵜어. 파면 되고 사저에 오신 건데도 담담하게 웃으시더라구.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웃으실 수 있는지 나는 감명을 받았어. 박근혜 대통령은 조선의 단종 다음으로 순교자가 된 분이야. 그 의연함을 보고 존경하고 싶어. 앞으로 역사가 다르게 평가할 거야.”

민주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하버드에서 공부한 그 변호사는 여왕에게 목숨을 바치는 절대 충성의 신하가 되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사랑의 빛을 비춘 것 같다. 그러나 가까이 있어도 애정을 받지 못하고 그림자 뒤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서늘함을 말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없어 아마추어라는 비판이 더러 쏟아지고 있다. 주위와 불통하고 독불장군으로 혼자 간다는 것이다. 주위가 온통 적이거나 얼음같이 냉랭한 사람들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초기 민정당 의원 한 사람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연초에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보자고 하시는 거야. 갔더니 내 지역구에 80억을 지원하라고 메모지에 쓰면서 나보고 지역구에 아성을 쌓으라고 하더라구.”

흥분한 그 의원은 어느새 대통령의 심복 부하가 되어 있었다. 정치라는 건 그런 것인가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이 뒤늦게 변호사를 감동시킨 것처럼 야당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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