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⑭] 수사기관의 ‘고문’과 ‘변호사 저널리즘’

남영동 대공분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모해 일반인 관람도 가능하다.

27년 전 스산한 바람이 부는 봄날 서울구치소의 냉기 서린 접견실에서였다. 누런 홋겹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물었다.
“변호사는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데 인권옹호인 변론은 알겠는데 사회정의란 뭘 한다는 겁니까?”

그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였다. 그는 이미 답을 안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옆방에 고문으로 맞아 죽은 남자가 있습니다. 죽은 후에 부근의 야산에 매장당했습니다. 의사는 맞아서 멍투성이인 걸 보고도 그냥 심장마비라고 사망진단서를 만들었습니다. 담당검사는 확인하지도 않고 매장해 버리라고 변사체 처리를 지시했습니다. 국가의 조직적인 살인 은폐죠. 이런 사실을 변호사가 알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업무상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분을 내세우면서 도망갑니까? 아니면 세상에 대고 외쳐주기라도 해야 합니까? 변호사의 사회정의란 이런 걸 보고 들었을 때 뭐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 죄수들이 항의하면 이 사회는 나쁜놈들이 헛소리를 한다고 하면서 믿어주지 않습니다. 변호사가 외쳐주면 좀 다른 거 아닌가요? 죄수인 제가 법전에서 변호사법을 보니까 제일 먼저 사회정의가 나와 있어서 물어보는 겁니다.”

나는 그 죄수의 말에 한 마디도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 다음부터 나는 ‘변호사 저널리즘’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수사기관의 고문을 추적하고 싸웠다. 법정에서 폭로하고 글을 써서 언론에 기고해 왔다. 검찰청 강력검사실 수사관이 한밤 중 피의자를 고문하다가 죽인 일이 있었다. 그 현장에 있던 다른 피의자가 현장을 탈출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 와 구원을 요청했었다.

강력계 형사들이 밤에 피의자를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놓고 집단폭행과 고문을 한 사실을 알고 법정에서 폭로하기도 했다. 고문이란 묘했다. 법정에서 아무리 주장해도 그걸 인정해 주는 판사가 없었다. 알아도 모른 체했다. 그것은 일종의 묵시적 동조일 수도 있었다. 은밀한 시간 은밀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고문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고문에 있어서는 어떤 기관도 그놈이 그놈이었다.

그 은밀한 방을 기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취재를 해도 보도가 나가기 힘든 세상을 살아왔다. 범인을 잡지 못한다고 여론의 질타가 심했던 한 사건에서 늙은 형사는 내게 고문만 허용해주면 어떤 범인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남산의 지하실은 고문의 공포로 세상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던 곳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산의 지하실은 지옥 같은 장소로 묘사되고 있었다. 희미한 알전구 아래 콘크리트 바닥, 덩그렇게 놓인 철 책상이 있고 그 옆에 몽둥이 등 각종 고문 도구가 있었다.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거나 죽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세상에 퍼져 있었다. 그곳에서 조사를 받았던 사람을 만나 들어보았다.

“제가 갇혀 있던 곳이 지하 몇 층이었는지도 몰라요. 흐릿한 형광등이 켜져 있었고 벽은 점점이 구멍이 난 흰색 방음판이 붙어 있었어요. 그리고 방 가운데 칸막이를 한 철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모서리는 고무가 붙어 있었죠. 머리를 박는 자해행위를 막기 위한 것 같았어요. 구석에는 군용 야전침대가 있고 그 옆에 변기가 있어요. 처음 그 방에 들어가니까 옷을 전부 벗고 거기서 주는 군복을 입으라고 했어요. 조사관이 볼펜과 종이를 가지고 와서 지금까지의 살아온 과정을 모두 쓰라고 했어요. 시키는 대로 했죠. 가져다 주는 밥을 먹고 쓰고 또 다시 밥을 먹고 쓰고 했어요. 다 썼다고 하면 조사관이 와서 보고 부분 부분을 지적하면서 더 자세하게 보충을 하라고 해요. 그들이 알고 싶은 부분을 더 세밀하게 쓰라고 지시를 하기도 했죠. 3주쯤 되니까 내가 쓴 양이 제법 많아졌어요. 그 다음은 수사관이 내가 쓴 글을 읽고 현지에 가서 확인을 하는 것 같아요. 그 장소에 가서 지명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오더라구요. 돌아와서는 장소 표현이 틀렸다고 하기도 하고 만난 사람을 확인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기억이 잘못된 걸 다시 고치라고 하는 겁니다. 시키는 대로 했죠. 그 원고들을 다시 쓰라고 하고 다시 수정해서 쓰라고 하고 아마도 백번은 같은 내용들을 썼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거기 쓴 내용이 맞는 건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맞는 건지 나 자신이 먼저 헷갈리고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인간의 머릿속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것 같았어요. 또다른 형태의 고문이었어요.”

정보기관의 고참 수사관이 내게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간첩은 잡았던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면도 많았어요. 반정부적 성향의 사람들을 간첩단으로 만든 적도 있죠. 상부 명령으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끌어다가 혼을 내기도 하고요. 우리는 물라면 무는 개였으니까. 더러는 미꾸라지같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거물 사기꾼들을 데려다가 손을 본 적도 있죠. 사기 전과가 많았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권력자를 팔고 사기 치는 놈이었습니다. 교묘하게 매번 법망을 피해 나가는데 귀신같더라구요. 그런 놈은 언론에 아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손을 봐야 했어요. 우리 요원들이 그 놈 주위에서 미행 감시하다가 납치했습니다. 그런 경우는 적당히 혼을 내는 목적입니다. 수사관들이 군용 장교용 점퍼를 입고 서로 부르는 호칭도 김중령 박대위 하면서 공포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거죠. 여기 잡혀 오면 대개가 비굴해집니다. 무릎을 꿇고 처절하게 빕니다.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은 정말 몇 안돼요. 그러다가 진짜 투사를 보면 우리는 속으로 대단하게 보죠. 그런데 비겁한 놈들이 나가면 민주화 투사로 목청을 높인다니까요. 별별 놈이 다 투사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가도 대낮의 거리에서 우리와 눈길을 마주치면 쥐구멍을 찾아요.”

이런 얘기들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몇년 전 간첩혐의로 체포된 사람의 변호인이 되어 정보기관 수사에 입회한 적이 있었다. 공포의 지하실은 사라지고 오히려 진짜 간첩이 큰소리를 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제는 인권이 많이 향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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