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쌍의 친구부부와 함께 칠순기념 여행을 하고 있다. 일본의 시골인 야마구치현 하기시의 온천장에 와 있다. 중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여섯명의 친구다. 50년 이상 곰삭은 우정을
Author: 엄상익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정보기관의 조직원 자격을 얻은 것은 적나라한 역사의 본질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엄상익 칼럼] 묵호항서 만난 50대 “인생 나누며 사는 거죠”
저녁 무렵 아내가 게가 먹고 싶다고 했다. 묵호항 근처의 어시장안 게를 쪄서 파는 식당들을 돌아봤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새로 인테리어를 한 듯한 깨끗한 식당
[엄상익 칼럼] 노숙인 차림 목사와 ‘선한 사마리아인’
작은 교회 앞이었다. 비가 뿌리고 있었다. 노숙자 한 사람이 교회 입구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정물같이 앉아 있었다. 굵은 빗방울이 그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⑪] 자격미달 판검사들 비리는 어떻게?
어항 속 금붕어 같은 법조인 정보기관은 하나의 거대한 언론사 같았다. 정보관들은 아침에 회의가 끝나면 정보를 수집하러 나갔다가 오후가 되면 돌아와 보고서를 썼다. 데스크를 보는 사람이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⑫] ‘노랑신문’과 ‘존안자료’
청와대의 한 비서관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거캠프에 있다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왔을 때 참 막연한 심정이었어요. 정책을 기안할 자료도 없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도 막연했죠.
[엄상익의 촌철] 실버타운 ‘노인 왕따’
2년이란 시간이 흐르니까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은밀한 속살이 보이는 것 같다. 어제 90대의 노인 부부가 내게 하소연을 해왔다. 80대쯤인 부인이 분노가 가득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⑩] “주제사상 본질 등 가려있던 창을 열어주다”
정보기관은 내게 가려져 있던 창을 열어주었다. 냉전시대 반공을 위해 금지됐던 책들을 마음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보기관의 자료실에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있고 김일성 선집들이 있었다. 마르크스
[엄상익 칼럼] 나의 수첩…마음에 와닿는 대목 쓰고 외우고
한동안 예쁘거나 특이한 모양의 수첩을 사서 모았다. 인사동의 노점에서 파는 수제 수첩을 구하기도 하고 가죽으로 장정한 공책을 사거나 인도에서 두꺼운 종이로 만든 투박한 수첩을 사기도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⑨] 북파공작원의 영혼을 위하여
나는 장교로 최전방 눈 덮인 휴전선을 밤새 순찰을 돌기도 했다. 군 정보부대에서 특수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힘든 상황을 공감하고 싶었다. 깊은 산속의 지하의 칠흑같이 깜깜한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⑧] 남산 지하실의 철학
국가안전기획부의 교육과정을 통과했다. 나는 처음 몇 달 동안 정보기관의 수사관 경험을 했다. 수사국은 남산자락에 있는 붉은 타일의 장방형 건물이었다. 저주가 맺혀있는 악명높은 남산의 지하실이 그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⑦] 육사 출신 사명감 불타던 그는 훗날 국정원장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재판받던 그를 변호하다 [아시아엔=엄상익 변호사, 대한변협 대변인 역임] 나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고급 간부와 만났다. 변호사 시절부터 알던 정보관으로 나중에 국정원장이 된 인물이다.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⑥] 먹는 물에 독이 들어간다면
나는 계단식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서 정보요원들에게 예언같은 말을 하는 교관의 얘기들을 듣고 있었다. 대테러에 대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세균전의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학자 몇명이 연구소에서 변종
[엄상익 칼럼] 멀리서 찾아온 친구
노년의 한가로운 시간은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다. 나는 그 노년의 여백을 즐거움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고 글을 쓰는 즐거움이 있다.
엄상익 변호사의 ‘정보기관을 위한 변론’
1979년 12월, 수도군단 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군사반란이 있었다. 44년 전 일이다. 반란군인 공수부대가 군단사령부 작전 지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걸 묵인하면 반란에 동조한 것이 되고 막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