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고등어’ 작가 서현완 가이드, 정을병과 강태기를 소환해주다”

서현완 지은 <할아버지와 고등어>

2023년 6월 중순, 고희 기념여행을 떠난 우리들 여섯쌍의 부부들은 모지항의 고쿠라성 아래 마을 길을 걷고 있었다. 여행 안내자 서현완씨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성 아래 마츠모도 세이쵸의 문학관이 있는데 함께 가보시면 어떨까요?”

오히려 먼저 알았다면 내가 제안할 사안이었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수첩은 일본작가 마츠모도 세이쵸의 수첩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 마츠모도는 신문사 광고부 일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작업복 주머니에 들어갈만한 작은 원고지 수첩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다가 잠시 짬이 날 때 조금씩 그 수첩에 단편소설을 썼다. 그렇게 쓴 단편소설이 천 편이 넘는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데는 천재인 것 같았다. 나도 을지로 뒷골목의 작은 인쇄소에 특별히 주문해서 나만의 수첩을 만들었었다. 나는 마츠모도 세이쵸가 쓴 현대사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를 읽고 감명을 받았었다. 2차대전이 끝이 난 후 점령군인 미군 정보참모부의 정치공작 등을 파헤친 내용이다.

작가의 통찰력으로 미국이 피리를 불면 일본이 춤추는 일본정치의 내막을 파헤친 글이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나는 그의 작품을 문학 교과서 중의 하나로 삼기도 했었다. 우리는 함께 마츠모도 세이쵸의 문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청소가 된 문학관은 우리가 들렸던 어떤 정치인의 기념관보다도 더 잘 되어 있었다.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일본을 알 것 같았다. 문학관은 한 작가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고 있었다. 그의 노후 집필실이 보였고 서고에는 그의 장서 3만권이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그의 손 때 묻은 책들이 누렇게 색이 바랜 채 그대로 책장에 놓여 있었다.

친구 한명이 내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여행안내자 서현완씨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근무하다 일본 유학을 와서 20여년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를 버킷리스트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쓴 <할아버지와 고등어>라는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그는 글을 쓰면서 틈틈이 일본 여행인솔자로 활동하고 일본문화에 대한 강연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코로나로 여행사가 쉴 때는 요양보호사 일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자연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본질은 글쟁이가 아닐까. 그리고 여행안내자, 요양보호사등은 글을 쓰기 위해 잠시 입고 다니는 옷이 아닐까.

벌써 저세상으로 간지 오래된 소설가 정을병씨가 기억 깊은 곳에 있다가 슬며시 마음 표면으로 떠올랐다. 대학시절 그는 문학을 자신의 신앙으로 삼기로 했다. 문학을 마음제단 위에 올려놓고 평생 하루한끼만 먹기로 결심했다. 연탄 두장과 쌀 한줌 그리고 김치 몇 조각으로 하루를 견디고 글을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생활비가 들지 않아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최고의 인기 소설가가가 되어도 하루에 한끼만 먹었다. 이번에는 죽은 강태기 시인의 기억 한조각이 내게 다가왔다. 자동차 수리공이던 그는 열여덟살경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그는 나이 육십까지 순례자로 인도 등을 여행하면서 글은 나이 육십부터 정리하기로 계획했다. 포도주가 발효하듯 시가 내면에서 농익어 우러나올 때를 기다린다는 생각이었다.

그 나이가 됐을때 엉뚱하게 폐암이라는 손님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가 죽기 전날까지 병상의 매트리스 밑에 공책과 연필을 두고 시를 쓰는 걸 봤다. 밥이 나오는 것도 술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목숨을 걸고 문학에 매달릴까. 연극을 하는 사람들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나보다 연배가 아래인 서현완씨에게 물었다.

“가난과 고독, 자유를 화두로 글을 쓸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문학은 천재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20년 이상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그걸 이기기 위해 어린 시절을 정리한 글을 썼습니다.”

천재성을 가진 자만이 문학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의 대문호 나츠메 소세끼가 대작가인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에게 쓴 편지 내용이 생각난다. 문학을 하려면 그냥 소같이 쓰고 또 쓰라고 했다.

천재는 순간 타오르는 불꽃이지만 노력하는 작가야말로 영원히 남는다고 했다. 불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동경요리전문학교까지 나온 글쟁이 여행 안내자 서현완씨의 건투를 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