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어느 스타강사의 고백
“대학도 전문대도 다 떨어졌어요”
화면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윤곽이 뚜렷한 미남이 나타났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이 대학은 물론 전문대학 시험에 떨어진 걸 고백했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던 사실도 말했다. 그 정도 자신의 상처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
그는 강사로 인기가 높은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서른한 살부터 강사 노릇을 시작했습니다. 그 나이에 제가 뭘 알겠습니까? 어느 날 한 회사의 강연장에서였습니다. 사람들이 대개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고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표정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앞에 서 있나 생각해 봤습니다. 내 마음이 위축 됐습니다. 순간 나의 그런 무자격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청중들에게 첫마디로 ‘여러분 저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남성 미용사 정도로는 보이시죠?’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머리를 하면서 남성 미용사한테서 잡담을 듣는 정도로 여기고 들어주세요’라고 하면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같았다.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저는 소심해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상대방에게 주눅이 듭니다. 그걸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질문에 그가 먼저 되물었다.
“본인의 중심에 버틸 수 있는 어떤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면 끊임없는 독서로 얻은 지식과 철학이라든가 종교 같은 거죠. 배의 바닥짐같이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디 가나 주눅이 들 수 있고 빠져나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이미 스타강사가 되어 그 어떤 명문대를 나온 사람보다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학원강사로 성공한 그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강사로 성공한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두 집 밖에 살지 않는 작은 섬에서 자랐어요. 소년 시절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맥주 홀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죠. 서울대 정치과에 가고 싶었어요. 영국작가 써머셋 모옴이 쓴 <써밍업>을 달달 외웠죠. 서울대 시험에 거기서 예문이 많이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재수 삼수를 해도 서울대 시험에서 떨어지는 겁니다. 수학이 약했죠. 입시가 끝나면 백수 신세라 먹고 살아야 했어요. 그때 내 먹거리가 대학입시 때 치렀던 영어문제들이었어요. 서울대 영어출제문제 해설이라고 전단지를 만들어 고등학교 앞 전봇대에 붙였어요. 내게 과외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오더라구요. 내가 입시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친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죽어라고 그날 가르칠 영어만 외운 거예요. 당연히 내가 잘 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서울대에 합격을 하니까 명문고등학교 아이들도 내게 과외를 하러 왔어요. 내가 가르친 명문고 아이들은 다 서울대에 합격을 시켰는데 나는 결국 합격을 하지 못했죠.”
과외선생으로 알려진 그는 엉뚱하게 명문 대입학원에 영어강사로 스카웃됐다. 그는 독하게 준비했다. 자취방 한 면에 칠판을 설치하고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아 마이크를 대신하면서 연습을 했다. 시선은 앞을 향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분필로 칠판에 영어문장을 능숙하게 쓰는 연습을 하고 또 했다. 아이들의 그에게 감탄하면서 그는 명문학원의 최고 강사가 됐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강남에 자신의 학원을 세우고 다른 학원들을 인수하면서 학원 재벌이 됐다.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목표를 달성한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주눅이 들고 자신이 실패했다고 열등감을 가진다.
같은 사실을 가지고 사람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르다. 내가 본 스타강사는 실패를 방향을 바꾸라는 그분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상처를 경청하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 행위는 맑은 강물에 자신의 상처를 씻어내는 것 같이 보였다. 그들은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이만큼이나 왔다고 긍지를 느끼는 것 같다.
마음을 바꾸고 보는 눈을 달리하면 세상도 달라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