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3일 오후 8시 어둠 속에서 도심의 요염한 네온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테헤란로의 라마다르네상스호텔 커피숍에서 그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JMS의 피해여성들을 대리해서 형사고소를
Author: 엄상익
[JMS정명석의 기억③] 상습강간범이 시대의 중심인물?
그 집단에 있던 몇 명의 여성들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나는 그들에게서 그 집단 깊숙이 들어간 배경과 과정을 상세히 들으면서 기록했다. 교주와 접촉한 여성들은 뛰어난 미모의
[JMS정명석의 기억④] ‘축복식’···종교적 최면에 의한 강간
비밀연수가 끝날 무렵이었다. 처음 단체를 소개했던 여성이 유정미에게 성지에서 예술제가 열리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곳에 가면 선생님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JMS정명석의 기억②] 용감한 제보자와 지혜로운 기자
광화문의 코리아나호텔 레스트랑에서 시사잡지 <월간조선>의 조갑제 사장과 우종창 기자를 만나고 있었다. 평소 내가 사회적 고발이 필요한 사건을 맡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였다. 우 기자는
[엄상익의 촌철] 강릉 강풍 속 ‘젊은 노인’과의 대화
심한 강풍이 불고 있었다. 밭에 있는 창고건물의 양철지붕이 날아와 도로 위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탄 세보레스파크는 휘청거리면서 간신히 가고 있었다. 바다가 여기저기 부풀어 오르고 그
[엄상익의 촌철] 서울법대 출신 JMS변호사
수많은 여신도를 성폭행한 컬트 집단의 교주 얘기로 사회가 들끓고 있다. 야동 같은 지저분한 동영상들이 흘러나왔다. 일부 방송 인터뷰에서 지성인층에도 그 집단의 신도가 많다는 내용이 폭로되기도
[JMS정명석의 기억①] “신의 모습으로 위장, 인간 영혼 갈기갈기 찢어”
2004년 싸늘한 냉기가 돌던 봄날 저녁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여덟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자 앵커가 방송인 특유의 높은 톤으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한 신흥종교단체에서 탈퇴하려 했던 20대
[엄상익의 촌철] 법에 무슨 영혼이 있어요?
넓은 초원에 깊은 구덩이가 있다. 그곳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 외롭고 춥고 어둡고 아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다. 변호사란 직업은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다 절망의 구덩이에 빠진
[엄상익의 촌철] 목욕탕 때 미는 분이 말했다. “노동이 기도고 수행입니다”
마곡사 경찰관의 전화 20년 전의 그는 지금 70대 중반의 노인일 것이다. 절망했던 그는 지금 그때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날 밤늦은 시각에 갑자기 나의 전화벨이 울렸다. “엄변호사십니까?
[엄상익의 촌철] 가짜뉴스와 쓰레기글 더미 속 ‘좋은 글’이란?
나는 매일 아침 좋은 글들을 찾으려고 두리번 거린다. 인터넷에서 가짜뉴스와 쓰레기 같은 글들이 범람하고 시궁창 같은 악취가 피어오른다. 한 인간을 처절히 짓밟는 글들을 볼 때면
[엄상익의 촌철] 대통령의 손자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신문지면을 거의 다 차지하던 30년 전쯤이었다. 어느 날 저녁 대통령의 아들이 조용히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전에 친구 소개로 한번
이어령 교수의 ‘눈물 한 방울’
몇몇 고교 선배들과 만나는 모임에서였다. 선배 한분이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이어령 교수였어. 아직 20대의 천재 선생이 칠판에 두보의 시를 써 놓고
[엄상익의 촌철] 고품격 영혼의 즐거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다가 하나를 배웠다. 70대인 그는 어떤 일을 마주칠 때 ‘이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인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상큼한 기준이었다. 앞으로는 그걸 기준을 해야
[엄상익의 감사일기②] 군 시절 늪에서 나를 건져준 선배가 꿈에
짤막한 꿈 속이었다. 오래 전에 죽은 그가 나타났다. 곱게 다듬은 잔디같이 짧은 머리였다. 두툼한 볼살의 각진 턱이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고 인사했다. 그에게 큰
[엄상익의 촌철] 돈황 가는 길 만난 ‘인연들’
나는 갑자기 돈황을 가보고 싶었다. 당의 현장법사와 신라의 고승 혜초가 진리를 얻는 과정에서 그곳에 묵었었다. 그들의 영혼이 수도했던 신비한 기운이 서려 있는 굴 속에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