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목욕탕 때 미는 분이 말했다. “노동이 기도고 수행입니다”

밀레가 그린 ‘만종’


마곡사 경찰관의 전화

20년 전의 그는 지금 70대 중반의 노인일 것이다. 절망했던 그는 지금 그때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날 밤늦은 시각에 갑자기 나의 전화벨이 울렸다. “엄변호사십니까? 여기는 공주 마곡사 경내의 파출소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근무하는 박경사입니다.”

중년의 남자 목소리였다. 그곳 경찰관이 내게 전화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요?” 나는 의아했다. “마곡사 뒤의 계곡에서 50대쯤의 남자가 탈진한 채 발견됐습니다. 소지품을 조사해 보니까 엄변호사님의 편지 한장만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가족 연락처라든가 아무것도 없어요.”

이상했다.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더러 편지가 오면 답장을 써 줄 때가 있긴 있었다. “제가 보냈다는 편지를 몇 줄 읽어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야 기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찰관이 편지를 몇줄 읽자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그 몇년 전 한 남자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었다. 그는 일찍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공했다면서 미국 사회에 부탁할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그는 고교선배라고 하면서 뉴저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왜 그 분이 경찰의 보호를 받죠?” 그의 변신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미국에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마곡사 계곡까지 흘러들어온 것 같습니다. 사흘 전부터 계곡에 들어가 술만 마셨는지 완전히 탈진했어요. 몸도 가누지 못해요. 그래서 파출소 의자에 눕혀놓고 있습니다. 서울의 어느 목사한테 신세를 지다가 쫓겨 났대요. 그리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이렇게 된 거죠. 엄변호사님이 모른다고 하면 우리는 규정대로 행려병자처리를 해서 수용소로 보내겠습니다.”

그는 세상을 포기하고 죽으려고 했던 것인가? 갑자기 내가 관여하는 노숙자센터가 떠올랐다. 내가 부탁하면 밥과 잠자리를 줄 것 같았다. 그만한 학력과 경험을 가지고 거기 묵으면서 봉사하면 큰 도움이 되는 일꾼이 될 것 같았다.

“그분을 내가 말하는 주소로 보내주세요.” 내가 말했다. “저 사람이 몸도 가누지 못해서 택시를 태워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경찰관 박봉이라 3만원쯤 줘서 보낼랍니다.” 자기 돈을 내려는 경찰관의 마음이 따뜻했다. “그러지 마세요. 택시비를 내주시면 나중에 내가 송금해 드릴께요.”

다음날 새벽 내가 관여하는 노숙자센터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런 썩은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기 노숙자들이 거부합니다. 그 사람 배울 만큼 배웠고 미국에서 살았다면서요?”

노숙자들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배운 사람을 싫어했다. 또 미국에 살면서 거들먹거리는 걸 보기 싫어했다. 일단 잠자코 그들의 처분에 맡기기로 했다. 사흘 후 노숙자센터 담당자가 다시 전화를 했다.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지쳐 있는 걸 보고 택시 탄 걸 이해했어요. 그런데 워낙 지쳐서 그런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러고 있어요. 그 양반 엄청 좋은 학교를 나오고 많이 배운 사람인데 우리들 하고 같이 살면 좋을 것 같아요.”

그가 노숙자센터의 운영을 맡는다면 엄청난 일들을 해낼 것 같았다. 봉사자가 필요한 단체였다. 그런 그가 며칠 후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쩌면 서울로 올라오면서 나의 집으로 와서 특별대접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기는 그런 노숙자센터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단지 학력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그리고 잠시 상류사회에 속했었다는 것만으로 언제나 구름 위에서 살 자격을 부여받은 것일까. 그의 그런 의식이 그를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아닐까. 그 후 그의 기억은 나의 뇌리에서 하얗게 지워졌었다.

지금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창으로 잔디밭이 내려다보이고 있다. 가장자리로 돌벤치가 드문드문 놓여있다. 실버타운의 여성직원이 돌벤치를 닦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진다. 돌벤치들은 기름이라도 발라놓은 것 같이 항상 반들반들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그 여성은 실버타운 미용실의 미용사 같다. 바닷가에 있는 작은 실버타운에서 일년 동안 살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사무실 직원이 잠시 시간만 나면 화장실을 윤이 날 정도로 청소를 했다. 밤늦게 엘리베이터 문의 홈에 낀 먼지를 긁어내기도 했다. 자진해서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목욕탕의 이발사는 쓰레기를 치우고 때를 미는 분은 식자재용 감자밭 농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성실하게 만드는 것일까. 자세히는 몰라도 그들은 화려한 졸업장이나 돈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본에 가면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감동했었다. 그들의 내면에 ‘잇쇼 겐메’ 정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직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더러운 것을 만지고 힘든 노동을 하는 그들에게는 신명이 들어 있었다. 그 무엇인가가 그들의 영혼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느냐고 목욕탕의 때 미는 분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노동이 기도고 수행이라고 했다. 그들은 구한말의 인물인 강증산을 신봉하는 민족종교의 도인들이었다. 인간의 영혼을 바꾸는 힘은 좋은 스펙이나 재산에 있지 않다.

예수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맡은 일에 충성하라고 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지는데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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