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정명석의 기억④] ‘축복식’···종교적 최면에 의한 강간
비밀연수가 끝날 무렵이었다. 처음 단체를 소개했던 여성이 유정미에게 성지에서 예술제가 열리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곳에 가면 선생님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교주는 우상이 되어 있었다.
성지에서 신도들의 예술제가 열리는 날 유정미는 대둔산 자락에 있는 성지로 갔다.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고 소나무와 향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연못의 정자 아래에는 비단잉어가 흐느적 거리고 있었다. 한옥들이 곳곳에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유약을 바른 파란 기와가 투명한 햇빛을 퉁겨내고 있었다. “성지는 선생님이 신도들과 힘을 합쳐 목재와 돌로 하나씩 지었다”고 했다. 잔디밭 저쪽의 축구장에서 청년들이 함성을 지르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정명석은 항상 청년들과 어울려 같이 일도 하고 운동도 한다고 했다. 평화롭고 역동적인 광경이었다.
저녁노을이 산등성이로 내려오고 어둠 속에 푸르름이 섞일 무렵 잔디밭 중앙에 설치된 대형무대에서 흥겨운 밴드의 연주가 시작됐다. 서울에서 초청되어 온 유명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수많은 젊은 남녀 신도들이 무대 위 아래서 펄쩍펄쩍 뛰면서 환호했다.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것 같았다. 짙은 어둠이 내리고 하늘과 산의 경계가 허물어져 내릴 무렵이었다.
무대를 비추던 서치라이트들이 방향을 돌려 언덕의 한 지점으로 집중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뚜껑이 없는 하얀 차 위에 서서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그 모습을 보자 ‘와아’ 하고 열광하며 달려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천사같은 존재의 손이나 옷자락을 잡아 보려고 난리였다. 그걸 보고 있던 처음의 안내여성이 유정미에게 말했다.
“이 예술제의 잔치에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게 아니예요. 국내외에서 선택된 사람들만 왔죠. 천국잔치에 초청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정미씨는 정말 특별한 선택을 받은 겁니다. 선생님을 이렇게라도 본다는 건 대단한 은혜죠. 선생님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분이예요. 선생님의 염력이 든 도자기 한 점만 받아도 그 사람이 하는 일에 어떤 악령도 대적하지 못해요. 그러니 선생님을 한번 직접 뵙는다는 건 얼마나 영광이겠어요.”
경호원들이 선생님을 만져 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뜯어말리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천사같은 선생님은 신도들의 손을 한 사람 한 사람 잡아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선생님을 태운 차가 유정미 앞을 지나갈 때였다. 옆의 안내여성이 말했다.
“내가 선생님한테 정미씨를 보고해 놓았으니까 선생님 쪽으로 좀 더 가봐요.”
유정미가 그 말을 듣고 선생님 쪽으로 몇 걸음을 디뎠을 때였다. 차 위에 서 있던 남자가 유정미를 힐끗 보고 차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순간 부러움에 가득 찬 수 많은 눈길들이 유정미에게 꽂혔다. 유정미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치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이 황홀했다. 그녀가 차위로 올라갔다. 차는 다시 군중 사이로 가기 시작했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지?” 선생님이 물었다.
“모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따로 부를 것이다. 때를 기다리거라.”
한달 후 선생님과의 면담일자가 잡혔다. 그녀에게 단체를 소개한 여성이 말했다.
“선생님과의 면담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선생님은 시간이 날 때 마다 선택한 사람을 불러 개별적으로 축복해 주시죠. 저는 지상에서 구세주인 선생님과 얼마나 가까이 연결됐느냐에 따라 천국에 가서 신분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하면 선생님은 사실 재림한 주님인데 우리는 주님의 부인급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예수님은 도중에 죽는 바람에 하시고자 하는 일이 중단됐지만 재림주인 선생님의 성혈을 직접 받고 우리는 구원받고 천국의 높은 자리도 얻을 수 있죠.”
이윽고 그날이 왔다. 유정미는 목욕을 하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했다. 옷도 그동안 아껴두었던 투피스를 입고 안내여성과 함께 차를 타고 성전으로 갔다.
교주의 방 장지문 앞에는 궁녀처럼 그곳을 지키는 여신도들이 앉아 있었고 그 앞 탁자에는 그날 축복을 받을 여신도들의 명부가 놓여있었다. 이윽고 기다리던 유정미가 선생님 방으로 들어갈 차례가 됐다. 유정미는 조심스럽게 장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름을 먹인 노란 장판지가 깔린 넓은 방이었다. 격자 창문 아래 문갑이 있었고 그 옆 구석 공간에는 박제된 독수리가 노란 눈을 날카롭게 뜨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옆에 특이한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엎드려 있는 여인의 나상(裸像)이었다. 풍만한 유방과 둔부를 가지고 있었다. 방 가운데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예술제 때 본 흰옷을 입은 천사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체크무늬 남방에 면바지를 입은 시골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 모습도 좋게 생각이 되었다. 메시아가 다시 오셔도 이렇게 순박한 모습의 남자로 오신다고 했다.
유정미는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았다. 말없이 앉아있던 남자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 했다.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말없이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 지면서 몸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꿈속같이 아스라한 곳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너를 사랑해 주신단다.”
그녀의 옷이 벗겨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 같았다. 몸으로 불같이 뜨거운 것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영혼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옷을 입고 문밖으로 나왔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녀는 선생님의 성혈로 더러운 몸이 진정한 깨끗함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후부터 그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고정적으로 성전으로 가서 선생님을 만났다.
변호사인 나는 많은 여성들로부터 그런 패턴의 얘기를 들었다. 세뇌되고 거의 종교적 최면상태가 된 여성들은 저항하기 불가능한 것 같았다. ‘종교적 최면에 의한 강간’. 나는 그렇게 법리적으로 해석을 했다. 어쩌면 최초의 판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