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JMS의 기억⑥] “언론의 관심 식기 전에…”
30대쯤의 남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저는 ‘엑소더스’라는 단체를 조직해 악마인 교주를 퇴치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전 운동권 출신입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는데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대학원생이 무참하게 테러를 당한 사진을 봤습니다. 또 JMS교주가 여성들을 유린하고 착한 신도들을 착취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단체를 조직해서 그 집단과 싸우기로 했습니다. 한번 우리들의 대책회의에 참석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방송과 잡지가 교주의 성폭행을 계속 다루고 있었다. 교주와 집단의 핵심 간부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피해자들의 모임이 구성되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나는 그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는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세미나실을 찾아갔다. 사회를 보는 남자가 앞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저는 고시공부를 하다가 교주에게 빠졌던 사람입니다. 반짝하는 언론의 관심이 이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멀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이비집단이 더 번성할 게 분명하니까요. 저는 나머지 인생을 이 집단을 깨는 데 바치기로 했습니다. 먼저 JMS 안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분을 통해 빼내온 비디오 테이프가 있습니다. 최근의 상황에 대해 JMS 내부에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그걸 먼저 보시죠.”
사회자는 그렇게 말하고 옆에 있던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었다. 잠시 후 지직거리면서 화면이 떠올랐다.
창문의 빛을 차단한 푸른색 커튼이 보이는 밀실같은 공간이었다. 몇백명의 JMS신도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서 한 남자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방송에 나온다고 해서 우리 선생님이 죽습니까? 흔들립니까? 아니잖아요”
그 말에 청중 속의 한 남자가 화답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을수록 선생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주변에서 “옳소”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강단에 선 남자가 말을 계속했다.
“예수 당시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서른 살의 무식한 목수 출신 시골 청년입니다. 그가 메시아라고 하니까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박해를 받은 게 아닙니까? 그렇지만 제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확신하고 박해받고 순교하는 바람에 기독교가 공인된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도 지금 박해를 받고 계십니다. 우리 제자들이 순교를 통해 우리의 섭리가 공인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섭리의 역사는 2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고난이 올수록 우리 섭리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말고 선생님을 중심으로 더욱 뭉쳐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어떤 풍랑이 일고 폭풍이 쳐도 우리의 공동체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유언비어가 방송에서 여과 없이 그대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때 청중석에서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터졌다. “선생님이 그렇게 고난을 당하시고 계시는데 우리 사도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가요? ”
그들 사이에서도 열기가 뜨거웠다. 화면은 거기까지 나오고 끝이 났다. 사회자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 여기 모이신 피해자들이나 관계자들의 체험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서 말씀해 주시죠.”
잠시 후 한 남자가 단위에 올라섰다. “저는 서울대 과학연구원에서 일하다가 특수한 염력이 있다는 교주에게 빠져 그 단체에 들어갔습니다. 저뿐 아니라 제가 사랑하던 여인까지 그 단체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중간관리자가 교주에게 상납하고 강간하게 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려고 하던 그 여자는 가출을 하고 없어졌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해맑고 선한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가 감정이 격해졌는지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여자를 관리하던 비밀모임을 찾아갔습니다. 어디나 비슷하지만 뒷 골목 빌딩 음습한 사무실에서 여러 명이 교주가 나오는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형태죠. 제가 그 모임의 관리자에게 너희들이 상납한 내 여자를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건달 같은 놈 여럿이 나를 잡아서 문밖으로 내동댕이 치더라구요. 그리고는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교주가 워낙 뛰어나시니까 이렇게 마귀들이 덤빈다는 거예요.”
그가 말을 마치고 내려가고 잠시 후 20대의 한 여성이 다음에 단위에 올라섰다. “저도 처음에는 교주를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직의 예술단에 속해서 선생님을 모시다 보니까 이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조직에서 나가기가 두려웠죠. 선생님의 저주가 내리면 사고를 당해 죽을 수도 있고 나중에 결혼을 해도 임신을 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결심하고 그 단체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교주의 경호원들이 봉고차에 타고 나를 데리러 왔어요.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니까 갑자기 주먹으로 내 배를 쳐서 나를 기절시켰어요. 그리고 봉고차에 저를 태우고 납치한 거예요. 선생님이 나를 잡아오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납치당해 가는데 그대로 갔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그래서 소변이 급하다고 사정했더니 경호원들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더라구요. 오줌을 누는 척 하면서 중앙분리대를 넘어 마을로 도망쳐 그들을 빠져 나왔어요.”
그 다음 남자가 나왔다. 역시 분노한 얼굴이었다. 그가 말을 시작했다. “여기 모이신 남자분들의 울분은 대부분 비슷할 겁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교주가 강간한 케이스일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교주에게 당한 여자들의 행태는 두 가지입니다. 수치심을 느끼고 바로 탈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 형태는 철저히 세뇌가 되어 신과 사랑을 나눈 사이라고 하면서 선택됐다는 자만심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교주는 그런 여성들에게는 ‘보고자’라는 독특한 직책을 줍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혜택을 주죠. 제가 그들을 추적하자 교주의 부하들이 저를 한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들이 저에게 앞으로 조용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중 한 명이 앞에 있던 유리컵으로 제 머리를 까고 발로 걷어 찼습니다.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벌렁 넘어갔습니다. 그가 바닥에 널린 깨진 유리조각을 하나 들어 제 귀를 그으면서 조심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완전히 뻗어버렸다가 나중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정신이 드니까 그 사람들이 이번에는 나를 거꾸로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사건을 상호폭행으로 조작했습니다. 목격했다는 호텔 종업원들이 모두 같이 그들의 주장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에서 저에게 벌금을 통보했습니다. 내 여자가 강간당했다고 고발해도 형사들이 비웃었습니다. 여자가 제가 좋아서 몸을 바쳤는데 강간은 무슨 강간이냐고 거꾸로 욕만 먹었어요.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했는 데 그 변호사가 배후에서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 손을 떼겠다고 합니다. 교주 밑에는 검사도 있고 경찰도 있습니다. 방송국 간부도 있고 건달들도 있습니다.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모임의 사회자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용기뿐만 아니라 지혜를 가지고 대항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피해여성들이 겁을 먹고 고소를 할 용기를 못내고 있습니다. 또 성폭행은 부끄러워 숨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피해자들을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변호사에게 집단소송을 해 줄 것을 부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의 관심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기자들을 접촉해서 우리의 상황들을 호소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뭉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