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됐으니 오래 전 얘기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선능역 앞에서 택시를 탔다. 희끗희끗한 기사의 뒷머리가 보였다. 앞좌석 등받이에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Author: 엄상익
[엄상익의 시선]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잖아요”
추석을 하루 앞두고 정선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펜션에 가족이 모였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다. 정선 시골장에서 사온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정원에서 숯불에 구워 먹었다.
[엄상익의 시선] 긴급할 때 전화 받아주는 사람
판사와 법대 학장을 지낸 고교후배와 차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아주 절실한 순간, 전화를 걸면 급하게 달려와 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 것 같아?” 그는 잠시
[엄상익 칼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장점을 모아보니
옛날에 썼던 메모지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 초기였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대통령이 저녁은 칼국수와 반찬
[엄상익 칼럼] ‘인생무대’에서 당신이 맡고 싶은 배역은?
60세의 현역 직장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퇴직 후 앞날을 생각하는 글을 보낸 분이 있다. 그 글을 보면서 직장이란 우리가 잠시 배역을 맡은 인생의 무대가 아닐까 생각해
[엄상익 칼럼] 어리석은 판사, 고마운 판사
요즈음 ‘동네 변호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맡아 직접 처리한다. 사무실도 직원도 없다. 칠십 노인이 직접 모든 일을 한다. 그는 법원장이었다. 대형
[엄상익의 시선] “노인의 노동은 ‘행복’이고, ‘축복’이다”
내가 있는 바닷가 실버타운에는 미국에서 역이민을 온 노년 부부들이 있다. 미국에서 수십년 살던 그들은 고국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1960년대 200달러를 가지고
[엄상익 칼럼] 인생에서 ‘한끗’ 차이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백명 모여 공부하는 산속의 기숙학원을 유튜브 화면을 통해 봤다. 집중적으로 공부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곳 같았다. 군대식으로 점호도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엄상익의 시선] 천사를 만났다
28년 전 여름,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장면이 갑자기 마음의 스크린에 펼쳐졌다. 적막한 산속의 무성한 나무 사이로 안개가 물같이 흐르고 있었다. 짙은 녹음으로 하늘이 거의
[엄상익의 시선] “혼자 놀 줄 아는 노년, 당당하고 아름다워”
혼자 노는 능력이 탁월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치과의사인 한 친구는 의원 문을 닫았다. 그는 허름한 자신의 승용차에 낡은 텐트를 넣어 가지고 전국을 유랑하면서 살고 있다.
[엄상익의 시선]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다큐 화면 속에서 청춘들의 아우성과 절규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우리에 갇힌 가축 같이 들어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컵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도 손에는 영어단어장이 들려
[엄상익 칼럼] 가난에서 오는 옹졸함 혹은 자격지심?
아흔살의 노인의사는 평생 가슴에 맺혔던 얘기를 했다. 그가 수련의 시절은 보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그가 교수댁에 인사를 가려는 데 차마 빈 손으로 갈 수가 없었다는
[엄상익 칼럼]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
특이한 얘기를 들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고 했다. 할머니도 노비였고, 아버지는 머슴, 어머니는 하녀였다고 했다. 2023년인 지금도 그는 노비인 할아버지와 머슴인 아버지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엄상익 칼럼] 노인들의 세 가지 공통된 후회
가난한 날의 행복을 잊고 지내다, 문득… 밤바다로 나갔다. 하늘과 맞붙어 구별이 안되는 검은 공간 저쪽에서 오징어배 한 척의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어둠
[엄상익 칼럼] 맛집 찾는 사람 비난하던 내가 변했다
며칠 전 저녁시간 동해시의 외곽 기차길 옆 작은 중국음식점을 찾아갔다. 서울서 내려온 청년 셰프가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다. 식당에서 추천하는 찹쌀탕수육과 짜장면을 주문했다. 하얀 찹쌀옷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