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택시 안 모금함을 오해했었다”
15년 됐으니 오래 전 얘기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선능역 앞에서 택시를 탔다. 희끗희끗한 기사의 뒷머리가 보였다. 앞좌석 등받이에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택시 운전사로 조직된 모임인데 양로원, 고아원, 장애자인을 찾아가 봉사하니 조그만 성금이라도 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앞 의자 사이의 작은 공간에 천원짜리 몇 장이 바닥에 깔린 아크릴로 만든 투명한 모금함이 놓여 있었다. 돈을 내도 정말 불쌍한 사람들에게 그게 갈까 하는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그런 의심은 더 차디차게 사회를 얼어붙게 하는 오염같기도 했다. 나는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통에 넣으면서 말했다.
“고된 운전을 하시는데도 좋은 일 하시네요.”
사실 지난 주 교회에 늦어 헌금할 기회를 놓쳤었다. 그 하나님의 돈을 지금 택시 안 모금함에 넣은 것이다. 택시기사가 흘낏 옆의 모금함 바닥에 떨어진 파란 만원권 지폐를 보면서 말했다.
“아이쿠 만원이나!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정말 고마운 얼굴이었다. 그가 얘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차 안에서 성금을 모으면 많은 분들이 의심을 하세요. 중간에서 착복하는 게 아니냐고. 그래서 여러 가지 증명이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그는 수많은 질문과 의심을 받아온 게 틀림없었다. 몇 초 전 나도 속으로 그랬다. 내가 그가 관련 증명서류들을 보여 주려는 걸 거절하면서 그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이런 봉사를 하시게 됐어요?”
“핸들을 잡은 기사들을 몇 명 규합해 좋은 일을 하기로 작정했죠. 먼저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급한 환자나 노인들을 무료로 태워 줬죠. 작은 일이지만 기분이 좋더라구요. 욕심이 나서 범위를 조금 넓혀봤어요. 서로서로 조금씩 돈을 모아 먹을 걸 사들고 양로원에도 가고 무의탁 노인을 찾아 쌀도 들여놔 드렸어요. 어느새 이 봉사활동에 합류한 기사가 350명이 돼요.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닙니까?”
그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그는 올해 25년 된 개인택시 기사라고 했다. 뒤늦게 아내와 자식의 권유로 믿음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신호등에서 잠시 정차한 동안 내가 모금함에 넣었던 만원짜리를 꺼내 감추었다.
“왜 그러죠?”
내가 그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물었다. 걸인들이 동전이 아니라 천원지폐를 주면 남몰래 얼른 감추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손님들이 조그만 성의를 내려다가도 통 속에 고액권이 있는걸 보면 부담을 느끼실 거 아닙니까? 저는 그저 백원짜리 동전 한 닢이라도 감사한데 말이에요. 그래서 감춘 겁니다. 허허.”
백미러 속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기사 얼굴이 비쳤다.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한 나의 선입견이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비뚤어진 눈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봉사해 보니까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새벽까지 운전해서 완전히 몸이 파김치가 되고 바로 양로원을 찾아갈 때면 정말 힘들죠. 그런데 말입니다 손님. 정작 가서 좋은 일을 하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내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 분들이 제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즐겁게 해주는 거예요. 정말 저는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 분들에게 감사하게 됐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그가 얘기를 계속했다.
“저는 택시기사 직업에도 정말 감사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땀 흘려 뛰는 만큼 그리고 일한 시간만큼 정확하게 보수가 주어지는 직업 아닙니까? 그렇다고 우리 기사가 누구에게 상품을 팔려고 과장을 합니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세상에 자랑할 것은 없어도 택시기사보다 정직한 직업은 없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을 계곡물에 마음을 한바탕 씻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리 안내고 생색 안내면서 조용히 시작된 이런 운동은 신선한 샘물처럼 우리 사회를 맑게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