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퇴계 이황과 하서 이인후의 ‘한바탕 낭만’
한 집안의 소송을 맡았다가 우연히 그들 조상의 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조선의 선비였던 조상은 과거의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묵으면서 2차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다. 그 선비는 엉뚱한 취미가 있었다. 공부보다는 벗들과 정담을 나누는 걸 더 즐거워했다.그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가 지은 노랫말에 당시 장안 기생들이 곡을 붙여 부르면서 히트가 됐다.
그 선비가 한양의 성균관에서 보낸 세월이 10년쯤 흘렀다. 다른 선비들은 과거에 합격해서 벼슬길로 나섰는데 그만 낭인이 되어 혼자 남았다. 성균관의 마당에 낙엽이 떨어지던 가을 어느 날이었다. 키가 후리후리한 선비 한명이 손에 술병을 들고 그 선비를 찾아왔다. 이미 노래로 유명해진 그와 정담을 나누기 위해 온 것이다. 그들은 단번에 벗이 되어 술단지를 놓고 정담을 나누었다.
키 큰 선비가 퇴계 이황이었다. 그리고 장안에 히트곡을 유행시켰던 선비가 호남의 대표적인 학자인 하서 김인후였다. 멋진 벗들의 만남이었다. 낭만적 기질의 하서 선생은 그 후 과거에 급제하고도 오래지 않아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했다. 장성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작은 정원을 만들고 산에서 난초 뿌리를 캐다가 심었다. 포도주를 만들어 인근 벗들과 즐기기도 했다. 소쇄원이라는 정원을 만든 선비와 벗이 되어 정담을 나누었다고 일기에 적혀 있었다. 그런 것들이 진한 맛이 우러나는 고급 즐거움이 아닐까. 그 선비의 일기를 통해 나는 향기로운 삶을 배웠다고 할까.
나도 동해의 한적한 바닷가로 내려와 살고 있다. 서울과는 달리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다. 중소도시의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근래에 새로 생긴 벗들이 있다. 서로간 마음이 흐르면 순간을 스쳐도 벗이라는 생각이다.
옥계의 해변 마을로 내려와 작은 집에서 14년째 산다는 노인은 바닷가의 짙은 해무(海霧)가 춤을 추며 자신의 허리를 감싸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한시를 짓고 작은 정원을 가꾸고 로스팅한 커피를 벗들과 함께 하면서 정담을 나눈다고 했다.
지리산 산골 마을에서 혼자 12년째 살면서 참선을 하고 경전을 읽는다는 수필가도 근래에 새로 만난 좋은 벗이다. 그는 차를 운전해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글을 짓는다. 정담을 나누는 나의 좋은 벗이 됐다.
금년에는 소년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벗들과 일본의 시골 온천 동네를 여행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칠십고개를 넘어선 노인들이 편한 잠옷을 입고 다다미방에서 발을 길게 뻗기도 하고 벽에 편하게 기대기도 한 채 입에서 나오는 대로 편하게 얘기들을 했다.
우리들은 까까머리에 검정교복을 입은 소년 시절부터 칠십 노인이 된 지금까지 세월을 함께 한 벗들이다. 대학 시절 우리는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고시원이나 깊은 산골의 암자에 같이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들은 암자 뒷방에 모여앉아 속을 터놓고 낄낄대며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가난을 얘기하기도 하고, 아픈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각자의 분홍빛 꿈을 말하기도 했다.
서로 비밀이나 흉허물이 없었다. 세월이 50년이 흐르고 우리들은 눈을 가득 뒤집어 쓴 소나무 같이 모두 머리가 하얗게 바랬다. 각자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 우리는 다시 모두 자연인이 됐다. 장관을 했던 친구는 재활용 헌옷들을 차의 트렁크에 가득 싣고 바자회에 가져다 주다가 불법주차 딱지를 받고 웃음을 터뜨렸다.
재판장을 하던 친구는 거리악단을 만들어 노숙자촌에서 버스킹연주를 한 상황을 신나게 말한다. 법원장을 지낸 친구는 쪽방촌에 도시락 배달하면서 본 광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우리들은 이따금씩 재래시장 구석의 허름한 국수집에 들려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디저트로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호떡을 먹으며 거리를 걷는다.
산다는 게 뭘까. 증권시세가 오르내리는 그래프를 보면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걸까. 정치권을 기웃거리면서 자리를 하나 얻는 게 쾌락일까. 어디 사외이사 자리라도 하나 얻으려고 다녀야 할까. 좋은 벗들을 만나 정담(情談)을 얼마나 나누었느냐가 아름다운 인생의 결산은 아닐까.
동양은 제자백가가 경합하다가 유교가 세계종교, 서양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기독교)이 공존하다가, 로마가톨릭이 세계종교됨. 인도는 브라만에 항거해 일어난 부처의 불교가 주변국에 단순포교를 해, 한때 고대세계 세계종교였지만, 발원지 인도에서 천 몇백년동안 선발신앙인 브라만의 힌두교에 억눌려 탄압받으며 현재에 이름.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고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이 되고, 조선 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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