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인생에서 ‘한끗’ 차이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백명 모여 공부하는 산속의 기숙학원을 유튜브 화면을 통해 봤다. 집중적으로 공부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곳 같았다. 군대식으로 점호도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젊은시절 고시원에 있을 때 장면들이 머리속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하루의 공부계획량을 짜고 과학적으로 시간을 배정해서 생활했다. 그는 자기의 목표량이 달성되면 완성의 의미로 엑스 표시를 했다. 합리적인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그의 옆방에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다른 친구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시험이라는 게 치열한 상대적 경쟁이고 한끗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는데 자기계획에 만족하면 안 되지. 내가 저 친구보다 매일 한 시간씩이라도 더 공부하면 저 친구의 계획은 불완전한 게 되는 거지.”
그는 시험의 본질을 아는 것 같았다. 그가 합격하고 계획 달성에 자기위로를 하던 친구는 떨어졌다. 미세한 점수차인 것 같았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대학시절 한 사람은 성적이 우수하고 다른 한 사람은 별로 좋지 않았다. 둘 다 공부를 지탱할 수 있는 돈이 없어 고통을 겪었다. 대학시절 성적이 좋던 사람은 학원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시 공부를 계속했다.
다른 사람은 부모님에게 꾸더라도 2년치 생활비만 마련해 주면 결판을 내겠다고 했다. 가난한 부모는 무리를 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아들에게 주었다. 사법고시에서 대학시절 성적이 좋지 않던 사람이 합격을 했다. 두 사람의 사법시험 성적이 한끗 차이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수석졸업한 선배가 있다. 그는 사법고시에도 수석을 했다. 한번은 그에게 수석을 한 요령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간단히 대답했다.
“고등학교 때는 다른 아이보다 한 과목당 문제 하나만 더 맞추려고 노력했어. 실수만 줄여도 하나는 더 맞출 수 있지. 그게 수석의 요령이야. 고시에서도 과목마다 1점이라도 더 맞으려고 노력했어. 한끗 차이야”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사법고시 2차 시험을 봤었다. 100문제쯤 예상문제를 뽑아 달달 외우고 갔다. 그게 적중하면 인생의 무지개를 잡는 도박이었다. 시험의 마지막 날인 나흘째 오전까지 예상문제가 적중했다. 마지막 한 과목 문제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주면 나는 합격할 것 같았다.
마지막 문제를 보는 순간 심장이 뛰었다. 예상이 적중한 것 같았다.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바로 펜을 들어 붉은 궤지로 된 답안지에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5분쯤 흘렀을 때였다. 우연히 앞 수험생 어깨너머로 그가 쓰는 답안지가 보였다.
그 순간 내가 문제를 착각하고 엉뚱한 답을 쓰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순간 망설였다. 방향을 바꾸면 나는 커닝을 한 셈이다.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평생 양심이 괴로울 것 같았다. 방향이 틀린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썼다. 한 달 후 발표가 났다.
마지막 시간에 치른 과목이 39점이었다. 1점만 더 받았으면 합격했을 것 같다. 한 끗 차이로 실패한 것이다. 다음해에 합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로 7년 세월이 허망하게 흘렀다. 다시 시험칠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엉뚱한 마가 끼었다.
기존의 역사 과목이 빠지고 그 자리를 국민윤리 과목이 채웠다. 역사는 내가 좋아해서 항상 고득점 하던 과목이다. 새로 생긴 국민윤리라는 과목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뜬구름 잡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합격을 했다. 국민윤리 점수가 40점이었다. 1점 부족한 39점이었다면 영원한 고시낭인이 되어 좌절했을 것이다. 정말 한끗 차이로 구제받았다.
그 한끗 차이에 세월이 덮이면 어떤 모습일까. 외무고시에 합격했던 사람은 대사가 되고 차관이 됐다. 합격하지 못한 사람은 소시민으로 자영업을 하면서 노인이 됐다.
같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법원장이 되고 대형로펌의 대표가 되고 부자가 됐다. 떨어진 사람은 70대 중반에 노숙자가 되어 친구 사무실에 구걸 하러 다니고 있다. 가장 비참한 경우다.
시험장에서 내 앞에 앉아있던 수험생은 국회의원이 되고 법무 장관이 되고 여당대표가 됐다. 젊은시절 한끗 차이가 운명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그 ‘한끗 차이’라는 것의 본질은 뭘까. 단순한 인간적인 노력일까. 신의 장난일까. 아니면 섭리일까.
칠십이라는 세월의 고개를 넘으니까 나의 시각이 또 달라졌다. 세상에서 잘나 보여도 잘난 게 아니고 못나 보여도 못난 게 아닌 것 같다. 늙어서 다시 평등해지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잘 됐던 사람이 착하고 선한 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마지막에 그 한끗 차이를 없애주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