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영원한 가치를 지닌 화폐
몇몇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 중 한 친구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통해 증권시세를 살폈다. 내 눈에는 돈에 묶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사무실 근처 주차장 앞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파는 남자를 보았다.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밀리는 손님 때문에 오줌을 참아가면서 붕어빵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목 좋은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비오는 날이나 휴일에도 그 자리에 나와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일식집을 경영하는 부부도, 냉면집 주인도, 고깃집 노인도 돈이 들어오는 계산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 빌딩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 돈은 많지만 사건 사고로 항상 전전긍긍이다. 임차인들과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달에 들어오는 임대료가 엄청나다. 세무조사가 두려워 여행도 제대로 못한다. 그들은 모두 돈이 잘 벌리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나는 부자들을 많이 봤다. 2000억대쯤 가진 부자친구에게 물었다.
“자네한테 돈은 어떤 의미야?”
“천억대가 넘으니까 그 자체로 사회적인 힘이고 지위가 되더라구. 부자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와서 그냥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는 거야.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일정액 이상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신분 비슷한 거지. 동창들도 내 앞에 와서 눈치보고 기는 거야”
남이 나보다 약간 돈이 많으면 배가 아파한다. 1천배가 많으면 두려워하고 1만배가 많으면 노예가 된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부자소리를 듣는 내가 두려운 건 재산의 총액이 줄어드는 거야. 그건 내가 획득한 지위의 상실을 의미하는 거지. 내가 가진 돈의 총액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해서 돈을 쓰지를 못하겠어.”
가난한 사람들은 돈에 대해 어떨까. 그들 역시 돈 걱정에 영혼이 묶여 있다. 월급을 갈급이라고 표현하면서 돈에 끝없는 갈증을 느끼고 있다. 돈이 없어 소외되고 가난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돈만 있으면 행복의 무지개가 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시로 로또복권을 사고 다단계 행사장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사기꾼에게 걸려 있는 것마저도 빼앗긴다.
감옥에 가보면 돈복이 없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저세상에 가지고 가지 못하는 돈을 움켜쥐고 죽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돈돈 하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돈은 하늘 위를 높이 나르는 기러기 같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그걸 잡을 수는 없다. 갈구한다고 돈이 오는 게 아니고 돈 버는 방법을 공부한다고 부자가 되지도 않는 것 같다.
각자 타고난 그릇이 있고 거기에 채울 정도만 돈은 주어지는 것 같다. 부자와 가난한 이의 경계도 애매할 때가 있다. 수천억 재산이 있어도 곰탕 한 그릇 소주 한병 사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부자 영감이 카트에 폐지를 줏으러 다니는 걸 본 적이 있다. 변호사인 내가 상담료 10만원을 내라고 하니까 도망가는 재벌회장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이었다. 해변가에서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팔면서도 힘든 사람을 위해 금반지를 기부하는 여인을 봤다. 그 여인은 부자였다.
더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가난뱅이고 베푸는 사람은 부자였다. 몇년 전인가 돈욕심에 마약에 손을 대 사형선고를 받은 중국재벌의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가게 하나 가지고 가족 하고 재미있게 살 걸 괜히 재벌이 됐다고 후회하더라는 것이다. 돈이 어느 정도만 있으면 될 지를 알려주는 말이었다.
요즈음 투기대상이 되는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보면서 나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화폐’를 상상해 보았다. 저 세상 심판대 앞에서 이 세상 돈은 전혀 의미가 없다. 가져갈 수도 없다.
예수는 하늘나라에 적립할 ‘영원한 가치가 있는 화폐’를 구하라고 했다. 그 화폐를 이 세상에서 만들면 즉시 하늘의 계좌에 적립된다고 했다. 도둑맞을 우려가 없다고 했다.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부자가 착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돈을 쓰면 그 순간 그 돈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하늘의 화폐로 환전 되는 게 아닐까. 가난한 사람이 선을 행하면 그 선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가 되는 건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시 엄변호사님 글을 읽으며 생각도 성격도 저하고 참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마치 제 글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항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