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누워서 빈둥거리기

내가 묵는 실버타운 로비 엘리베이터 옆에는 중국식 자단나무 의자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다. 바닥은 딱딱하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단정하게 앉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졌다. 조선의 왕이 앉는 의자도 반듯하게 앉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단정한 위엄을 나타내도록 하는 유교 사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의자들은 사람이 단정하게 앉게끔 설계되어 있다. 의자의 다리를 낮추거나 적당히 자르면 대번에 앉기가 훨씬 좋아진다. 의자는 낮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어머니 생전에 의자의 다리를 톱으로 잘라 낮추어 드린 적이 있다.

“나는 요즈음 자리에 가만히 누운 채 눈을 뜨고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생겼다. 책상 앞에 앉아서 억지로 머리를 짜내는 것보다 훨씬 여러 가지 구상이 잘 된다. 누워서 음악을 틀어놓으면 훨씬 잘 들리는 것 같다. (중략) 조용히 누워있는 것은 나만의 비밀정원으로 들어가는 쾌락의 하나가 된 것 같다.” <사진 엄상익>

나는 요즈음 침대에 길게 누워 낮에는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고, 밤이면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노란 달을 보기도 한다. 누워서 천정의 얼룩 자국을 멍하게 보면서 상념을 따라가다 보면 순간적으로 머리속이 진공처럼 텅 비워지기도 한다. 마음의 대청소를 한다고 할까.

침대에 누워있으면 치솟는 새벽닭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가슴속을 파고 들기도 한다. 누워있을 때 나는 외계와 동떨어져 완전히 혼자 있다. 발가락이 해방되어 있으니까 두뇌도 해방되고 머리가 청소되니까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자라던 시절은 누워서 빈둥거리는 걸 죄악 비슷하게 느꼈다. 잠을 많이 자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잠을 적게 잔 게 자랑이었다.

중학입시 경쟁이 치열했던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다. 엄마는 새벽 4시를 알리는 교회 차임벨 소리가 날 때면 강제로 나를 깨워 책상 앞에 앉혔다. 밤 10시쯤 끄떡끄떡 졸고 있으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마당의 수돗가로 나갔다. 엄마는 양철 바케스에 찬물을 가득 담아 나에게 쏟아부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을 자면 나태한 나쁜 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낮잠을 자다가 혼난 적도 있다. 시험 때면 내남없이 밤을 샜다는 게 자랑이었다. 약국에서 각성제를 사다 먹고 잠을 자지 않았다.

고시공부를 할 때도 잠 안자기 경쟁이었다. 군대에서도 잠을 안 자고 행군을 했다. 직장에서도 잠을 안자고 책상 앞에 앉아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성경도 “누워서 빈둥대면 가난이 도둑같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나는 나이 들어서까지도 침대에 누워있다가 어머니 기척이라도 나면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법무장교 시절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장교가 있었다. 볼이 움푹 들어간 하얀 얼굴을 가진 그는 로이드 안경을 쓰고 있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일찍 붙은 수재였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서울법대에 들어갈 때까지 아버지한테 스파르타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잠을 못자게 하면서 공부를 시켰다고 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정원 나무에 묶고 때렸다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해서 그는 서울법대에 들어갔다고 했다.

육군 중위 시절 우리는 여관에 들어가 팬티만 입은 채 고스톱을 치고 놀았다. 다음날 해가 훤히 떠 있을 때까지 잤다. 어떤 해방감을 공유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이후 근엄한 재판장을 하느라고 긴장을 풀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 그는 고등법원장까지 올라갔다. 누워서 빈둥거릴 시간이 없었을 것 같다.

칠십고개를 넘은 이제야 오랫동안 나를 묶었던 정신적 전족에서 풀려난 것 같다. 부드러운 베개 위에 머리를 30도 정도 받쳐놓고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깍지를 끼거나 팔 하나를 벼개 밑에 파묻은 채 누워 있으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그런 순간 수 많은 구상들이 물방울 같이 의식의 수면위로 떠 오른다. 누워서 빈둥거린다는 건 또 다른 창작의 시간인 것 같다.

소설가 김훈씨의 작업실에 갔을 때였다. 구석 바닥에 요와 구겨진 이불이 놓여 있었다. 머리가 무거워지면 누워서 구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소설가 이문열씨의 작업실에도 침대가 있었다. 흐트러져 있는 이불 모습을 보니까 수시로 눕는 것 같았다. 누워있으면 확실히 구상이 잘 떠오른다. 발해 관련 역사소설을 쓰던 소설가 김홍신씨는 꿈속에 고구려의 병졸이 되어 전쟁에 참여했다고 내게 얘기해 주기도 했다.

나는 요즈음 자리에 가만히 누운 채 눈을 뜨고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생겼다. 책상 앞에 앉아서 억지로 머리를 짜내는 것보다 훨씬 여러 가지 구상이 잘 된다. 누워서 음악을 틀어놓으면 훨씬 잘 들리는 것 같다. 세워놓은 병은 물이 고여있지만, 눕혀놓은 병에서 물이 잘 쏟아져 나온다. 조용히 누워있는 것은 나만의 비밀정원으로 들어가는 쾌락의 하나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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