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잖아요”
추석을 하루 앞두고 정선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펜션에 가족이 모였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다. 정선 시골장에서 사온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정원에서 숯불에 구워 먹었다. 5일장에서 사온 양념한 고들빼기와 김치도 깊은 맛이 스며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열살짜리 손자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나를 놀린다.
“할아버지 배는 완전 농구공이야.”
“맞아 그런데 손자도 배구공쯤 되네”
“히히”
녀석의 앞니 사이 넓은 틈이 눈에 들어온다.
“손자 요즈음 뭐가 즐겁니?” 내가 물었다.
“있죠. 저 고백 받았어요. 교회에서 만난 여자아이가 있는데 나를 좋아한다고 그래요.”
“너는?”
“나도 좋아하죠.”
“그럼 잘해줘라. 괜히 으시대고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해야 돼. 맛있는 것도 같이 사먹고 말이야. 할아버지가 데이트 자금을 좀 줘도 괜찮겠니?”
“주시면 저야 고맙죠.”
나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손자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나는 손자 손을 잡고 펜션을 나와 산책을 했다. 수량이 풍부한 개천이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손자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할아버지 인생은 복잡하게 사는 것보다 심플하게 살아야겠죠?” 엉뚱한 말이었다. 어디서 들은 소리를 전하는지도 모른다.
“너 복잡하게 산다는 게 뭔지 아니?”
“잘살려고 욕심을 부려서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복잡하다는 건 다 돈 많이 벌려고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요? 엄마가 나 공부하라고 들볶는 것도, 나중에 대학을 가야한다는 것도, 다 돈 많이 벌라고 하는 거잖아요? 난 대학 갈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열 살인 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철학을 말하는 것 같다만 누구한테 그런 소리 들었니? 교회에서 그러든?”
“아니요, 유튜브에서 배웠어요.”
“그래 하여튼 괜찮은 걸 배웠구나. 열살인 지금 네 생활도 심플 라이프지. 아빠 엄마가 다 해주고 아직 야망도 고민하는 것도 없을 때니까 말이야.”
손자 손을 잡고 걷다가 개천을 가로지르는 얕은 시멘트 다리 위에 섰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물이 불어 교각 바로 아래까지 수위가 올라 있었다. 그걸 보면서 손자가 말했다.
“비가 더 오면 이 다리 위로 물이 넘친데요. 이 다리를 잘 아는 마을 사람들은 차를 가지고 다리 위를 잘 건너가는데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 모는 차는 개천 아래로 빠지는 수도 있데요. 길을 미리 잘 알아야 하는 거죠.”
“그렇겠지.”
녀석이 무심코 하는 말에 의미가 있어 보였다. 다시 우리가 묵는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손자가 내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믿음이 뭔지 아세요?”
“글쎄다. 넌 믿음이 뭐라고 생각하니?”
내가 되물었다.
“하나님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아요? 그걸 믿어주는 게 믿음이죠.”
“아, 그런 거구나. 그건 어떻게 알았니?”
“다 유튜브를 보고 알았어요.”
“손자, 네가 지금 말한 것들의 의미가 어디까지 들어와 있니? 그냥 앵무새같이 외운 거니? 아니면 마음속에도 스며들었니?”
“그건 저도 모르죠.”
“아무튼 우리 손자한테 좋은 얘기 들었다. 지금은 네가 한 말을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는 그 말들을 영혼에 새겨둬야 한다. 알겠니?”
“네, 알았어요”
“손자, 사랑한다.”
“네—-”
녀석이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다. 내가 손자의 더부룩한 까치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손자의 말을 순간 되새김해 봤다.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인간 차원으로 신의 뜻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뜻인가. 그래도 믿는다. 내가 그 뜻을 다 이해한다면 그는 이미 신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열살짜리 손자의 입을 통해 믿음의 본질을 내게 알려주신 것 같다.
저는 종교가 없어요 .부디 하나님이 있길 빌지만.계시다면 너무 나뻐요.죄없는 어린아이에게 고통주고 데려가는것은 도저히 용서인지 용납인지가 안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