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학교폭력의 흉터 치유법
<조선일보>에 20대 여성 사진과 함께 독특한 기사제목이 떴다. [현실판 ‘더 글로리’학폭 고발한 표예림씨 숨진 채 발견]
학교폭력과 이를 복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인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학교폭력의 피해를 당한 뒤 유튜브 등을 통해 이를 고발했던 표예림씨가 한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유튜브에 “이제 그만 편해지고 싶습니다 이젠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낼 자신이 없어요. 삶을 지속해야 할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라고 자살을 암시하는 영상을 올렸다. 증오와 보복 그리고 절망이라는 감정이 뒤얽혀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린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중학교 3학년인 내 손녀는 혹시나? 하는 걱정이 피어오른다.
나역시 10대에 학교에서 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우쭐대는 성격의 재벌가 아들의 칼에 귀가 잘리고 얼굴이 찢겨 수십바늘을 꿰맸다. 자칫하면 죽을 뻔 했다. 2차 피해 3차 피해까지 있었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진실은 왜곡되고 나는 싸움을 도발한 불량학생으로 조작되어 무기정학까지 받았다. 뇌물을 받고 기울어진 판단을 했다고 후일 내게 고백한 선생의 양심은 편해졌을지 몰라도 그건 또 다른 영혼의 상처였다.
그러나 그 상처는 나의 눈이 열리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책과 추상적 관념을 통해 정의를 알 필요가 없었다. 10대 소년에게 상처는 정의가 무엇인지 단번에 깨닫게 해주었다.
보복이라는 이름의 정열은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 가난한 집 아이가 재벌과 동등한 위치가 되는 방법은 공부라고 생각했다. 보복의 에너지가 바로 대학입시에서 합격하고 그 후로 고시까지 합격하는데 나를 밀어 올리는 힘이 된 것 같다.
증오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다. 내면 깊숙이 뿌리박힌 피해의식은 또다시 나 자신이나 남에게 상처를 줄 위험성이 있었다. 나는 신앙의 힘으로 일그러진 영혼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쉽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세월은 증오의 감정을 풍화시켰다. 복수심도 그 색깔이 바랬다. 그러나 영혼의 상처가 잊혀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 학교 시절 나를 다치게 했던 그 친구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그는 아직도 소년시절의 유치함과 치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과거의 그 사건은 오래 전에 잊혀진 것 같았다. 재벌가 2세의 가진 돈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도 일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재벌의 철강회사를 무리하게 인수하려가 거액의 계약금을 날린 것 같았다.
남미의 국가들에 돈을 빌려주고 있는데 쿠데타 가 일어나 정권이 바뀌면 돈을 회수하기가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나는 그가 요구하는 것들을 묵묵히 해주었다. 그는 재벌아들이라고 하니까 평생 모두들 뜯어 먹으려고만 한다고 내게 불평했다.
나는 그에게 저녁을 샀다. 그는 퍽 좋아했다. 그의 주변에는 학교 때부터 평생 그를 영주같이 모시는 동창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평생 그를 모셨는데 받은 게 없다고 내게 와서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유치함을 용서하려고 마음먹었고 어리석음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들이었다.
그와 둘이 조용히 있을 때였다. 그가 갑자기 자기가 칼로 입힌 상처를 보자고 했다. 나는 그에게 잘려졌던 나의 귀를 보여주었다. 마음의 상처는 지워졌지만 봉합한 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말 미안해.”
그의 사과에는 진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증오의 감정을 품고 적을 괴롭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경우 적의 심리는 어떨까? 그 또한 가슴 속에 또 다른 증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상대방을 괴롭히고 뭉개는 복수를 한 경우, 얼핏 이긴 것 같아 보이더라도 사실은 그 반대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적이 요구하는 걸 묵묵히 제공할 때 그것은 상대를 굴복시키지 않은 것처럼 뵈지만 거꾸로 상대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증오와 보복이라는 어리석은 정열을 이기지 못해 자신을 호수에 던져 버린 그 젊은 여성이 안타깝다. 그녀는 귀신이 되어 영원히 세상을 떠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