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시선] 만추, 홍천 ‘은행나무 둘레길’로 떠나리
“차라리 3둔4가리를 말하지 말 걸”
옛날 어떤 사람이 세상이 싫어 오지를 찾아 강과 하늘을 벗 삼아 놀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상과 영영 인연을 끊지 못해 저 멀리 냇가에 사는 무명인(無名人)을 찾아가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물으니 “야, 이런 야비(野鄙)한 놈아, 나는 지금 저 조물주와 벗하여 놀고 있으며 그것도 싫증이 나면, 저 아득히 높이 나는 새를 타고 이 세상 밖으로 나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노닐거늘, 어찌하여 나를 더럽히려고 하느냐, 그만 물러가거라”면서 쫓아낸다.
이에 이렇게 먼 길을 찾아와 간청하니 한 말씀만 내려달라고 하소연하니, “그렇다면 사심(私心)으로 천하의 일에 개입하면 천하가 망하니, 먼저 마음을 담담(淡淡)하게 하고 기를 막막(漠漠)하게 하여 사사로운 마음부터 버리거라” 한다.
무명인이 나는 새를 타고 가서 머물렀다는 곳,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런 장애도 없는 곳,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은 어디에 있는가?
“단 하루만이라도!”를 외치면서 늘 이상향을 찾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만큼 인간이 싫어 도망갔지만, 인간 없이 못 사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오지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3둔4가리’다. 모두 강원도 방태산을 가운데 두고 3둔에는 내린천이 흐르고 4가리에는 방태천이 흘러 현리에서 합류한 다음 소양강이 되는 곳이다.
홍천군 내면 쪽은 둔(屯)이라 하고, 인제군 기린면 쪽은 가리라 부른다. 3둔은 달둔(達屯), 월둔(月屯), 살둔(生屯)이며, 4가리는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다. ‘둔’은 둔덕으로 내가 흘러 골짜기 옆에 사불짝 만들어진 펑퍼짐한 땅을 말하며, ‘가리’는 산비탈에 비스듬하게 붙은 좁은 땅뙈기를 말한다.
우리가 현리에 있는 방태산을 인식하게 된 8할은 군 생활 덕분이다. 어쩔 수 없는 강제적 고립이 가져다주는 그리움은 ‘치마만 둘러도 다 예뻐 보이는’ 현상을 초래하였지만, 지긋지긋한 오지의 경험은 이곳을 향해 ‘다시는 오줌조차 누지 않는다’는 푸념을 만들었다. 반면에 방태산 너머에 있는 3둔은 강제 고립을 자초할 만한 그 무엇도 없는 곳이라 여전히 오지 중 오지를 자랑하면서 무명인이 머물렀을 만한 동네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 그곳, 달둔에 한 사람이 찾아오는 새와 들짐승만으로는 심심해서인지 은행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말로는 아내가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자 근처에 있던 삼봉약수의 효험을 듣고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지만, 왜 하필 은행나무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무엇이든지 입소문만 나면 간질간질한 마음을 참지 못하는 현대인의 가벼움에 묵직하기 이를데 없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은 사라지고, 은행나무 숲이 자리한 달둔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만든다.
사람들이 모이자 음식점이 들어서고, 음식점이 들어서자 농산물 가게가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단 하루만이라도!’를 간절히 원했던 내 눈에는 이것이 번잡하게 보였지만, ‘단 하루만이라도!’에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번잡한 사람이 그리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