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벼’의 가르침…”풍요로우면 성장에, 결핍이 오면 열매에 집중한다”

“농부는 풍요과 결핍이라는 무기로 나락이 가을날 황금빛으로 물들게 한다. 불볕더위에 나락이 웃자라지 못하게 물을 빼고, 나락이 잘 여물도록 논을 바짝 마르게 한다. 무언가 결핍이 있어야 열매에 집중하는 것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글 사진 윤일원>

추석날 이슬 머금은 꽃을 찾아 헤매며

이슬인가 은빛 구슬인가 <사진 윤일원> 

추석날 이른 아침 이슬 맺힌 꽃을 찾으러 안개 자욱한 들판을 걸었다. 야트막한 산에 자리잡은 산소 언저리를 헤매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거기에는 이슬 머금은 꽃도 있었고, 거미줄을 잔뜩 휘감은 들깨도 있었고, 아직도 지지 않은 호박 넝쿨도 있었다. 옷에 잔뜩 달라붙은 도깨비풀을 피해 요리조리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고개 숙인 나락

모두 아침 이슬의 작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었다. “오호라,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고, 맺히면 맺힐수록 더 고개를 더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았지만, 그것을 실증하여 다시 깨달음을 얻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꽃은 꽃이 아니라 나락(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내 뇌는 본능적으로 찡하게 파르르 떨렸다.

“가을꽃은 나락이다.”

이렇게 장엄한 꽃을 곁에 두고도 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 꼴이, 머리를 머리에 이고, 머리를 찾아 한평생 헤맨 바보와 무엇이 다른가?

그때부터 나는 누런 황금으로 고개를 잔뜩 숙인 나락이 보이고, 아직은 덜 여물어 푸른 나락도 보이고, 간간이 검은 빛의 쭉정이도 보이고, 너무 많이 여물어 쓰러진 나락도 보이고, 나락잎 위쪽에 잔뜩 이슬 머금은 영롱한 씨알도 보인다.

나락은 참 많이도 무엇을 품고 살았구나. 누런 황금빛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겠는가? 물을 좋아하니 이른 봄날부터 도랑을 파 물길을 만들어야 하고, 한여름 뙤약볕을 좋아하니 물이 뜨끈뜨끈 하기를 기다리고, 나락의 알이 통통 밸 무렵부터 물을 쫙 빼 바닥이 잔뜩 가물도록 한다.

농부는 풍요과 결핍이라는 무기로 나락이 가을날 황금빛으로 물들게 한다. 불볕더위에 나락이 웃자라지 못하게 물을 빼고, 나락이 잘 여물도록 논을 바짝 마르게 한다. 무언가 결핍이 있어야 열매에 집중하는 것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무릇 모든 것은 풍요로우면 성장에 집중하고, 결핍이 오면 열매에 집중한다.

추석날 이슬 머금은 꽃이 나락임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온 농부의 DNA가 내 핏속에 분명히 있을 텐데, 도회지에서 한참이나 헤매고 나이가 한 갑자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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