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차마고도⑦] “자기야 사랑해…담에도 함께 떠나요.”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벤처 회의실에서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AI가 말을 문자로 전환하여 요약정리를 해주는 시스템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일찍이 연암 박지원이 이 문제 제기하여 “문자는 말을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라고, 인류의 오랜 화두, “말은 휘발성이라 아무리 녹음하여도 결국 문자로 전환하지 않으면 재활용이 어렵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제, AI가 이것을 자동으로 해준다면, 거꾸로 이 시스템으로 기업이나 관공서에 가치(value)를 제공하여 생산성을 높여주고, 그 대가로 개발업체는 이익을 가져온다. 이 과정은 무수히 많은 ‘경쟁’을 형성하는데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 중 하나이며, 이 과정은 남이 나를 선택하여 무엇을 이루는 설득과 거절의 줄타기며 이것이 민주주의 본질 중 하나다.
차마고도 여행의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중국의 어떤 모습을 나는 보았을까? 인천공항을 떠나 쓰촨성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서 쏟아지는 잠을 무릅쓰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구름 아래로 간간이 보이는 대륙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발 아래 바다가 있는 것을 보니 서해를 지나고 있을 거야, 바다와 육지의 경계면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니 산둥반도 경계면을 따라 비행 중일 거야, 평야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양쯔강을 지나 내륙으로 진입 중일 거야, 낮은 구릉 같은 산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곧 도착할 거야.”
무슨 국가 1급기밀이라도 되는 양 이동경로를 맵으로 보여주지 않는 중국 항공사의 불친절은 나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해 주었다. 그때 문득 나는 지상 1만m 상공에서 시속 1000km로 나르는 비행기 창문으로 세상을 관찰한다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를 깨닫고 그만 아연실색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중국의 몇 가지 근원적 문제점이 수천년 동안 이어진다는 사실에 더욱 깜짝 놀랐다. 불연속 경계면인 공항에서 만나는 ‘황제 리스크’다. 요즈음 중국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시진핑의 리스크’가 가장 크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중국은 불행하게도 황제 권한을 견제할 만한 종교나 사법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이러한 정치체제는 종종 혁신을 파괴하여 세계 4대발명품인 화약, 나침판, 종이, 인쇄술을 발명하고도 산업혁명을 이루지 못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우리의 삶을 해석하는 3개의 판때기 중 ‘거시의 틀’ 총괄 책임자인 황제, 그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걸림돌이 되었다. 우연히도 가운데 판때기가 매우 허약했던 유럽이나 일본이 산업혁명에 성공한 것은 기존의 판때기를 부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갈아타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여행 내내 가이드를 통해서 듣는 말이 “중국인은 무섭다”였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나라가 가난한 것은 그 나라 국민이 게을러서 그렇다”는 편견이다. 아니다. 못 사는 나라의 국민일수록 근육이 짓이겨지도록 일을 한다. 북한 주민을 보라. 그리고 중국 인민을 보라. 이들이 얼마나 악착같이 일하는지. 차마고도 여행 내내 국내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의 조악한 과일을 내다 놓고 파는 사람들, 정말 눈물이 핑돌 만큼 그들은 열심히 산다.
여행은 반면교사다. 어디 중국의 문제점만 보일까? 우리의 문제점 즉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개인의 풍요 속 빈곤’이다. 모두 자기 밥그릇이 적다고 입을 헤 벌리고 아우성 칠 때 정치권은 이때다 하고 마구 선심성 공약을 뿌린다. 근로의욕은 사라지고, 혁신은 소멸되며, 나라는 쇠락한다. 인간은 모순덩어리라 소중한 것에 반응하지 않고 희소성에만 반응한다. 물질의 풍요를 얻기 위해 잃어버린 것은 겸손과 사랑이다. 권력자와 가진 자와 배운 자의 겸손에 목말라하며, 아울러 바라만 봐도 숨이 멎을 듯한 사랑에도 목말라한다.
여강고성 내 왕부(王府) 호텔 앞 늦은 술자리에서 내 건배사는 ‘자기야’ 하면 모두 ‘사랑해’ 하고 외치는 거였다.
이번 차마고도 트레킹은 대구에 있는 (사)산학연구원 해외세미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해 여행의 맛과 멋을 더 했다. 물론 나도 China before & after를 강연했다. (끝)
그동안 윤일원의 차마고도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