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두더쥐’…집단평화 뒤에 숨은 잔혹한 번식경쟁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지독한 사회성 동물이며, 인간도 흰개미나 벌거숭이두더지(naked mole rat)와 마찬가지로 진사회성 동물이다.
진사회성(eusociality)이란 “집단 내 성체들이 여러 세대 아울러 살고, 서로 협력하여 새끼를 기르며, 번식하는 개체와 번식하지 않는 개체 사이에 철저한 분업이 이루어지고, 생식은 절대권력자 여왕만이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번 이야기는 진사회성 동물인 벌거숭이두더지 이야기다. 벌거숭이두더지는 인간 종족을 병들어 죽게 하는 ‘암’이 존재하지 않으며,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18분을 버틴다. 통증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수명이 30년이나 된다. 이는 다른 설치류에 비해 8배나 더 오래 살아, 먼 인류가 지향해야 할 생물학적 모델이 될 수 있겠다.
벌거숭이두더지는 흰개미처럼 최대 300마리가 군체를 이루어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케냐의 건조한 초원 아래에서 수 킬로미터나 되는 방대한 터널을 파고 지낸다. 이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 대략 1년에 4.4톤의 흙을 옮긴다.
벌거숭이 두더지는 무리에서 단 한 마리 여왕이 지배를 하고, 1~3마리의 선택된 수컷과 짝짓기를 하여 모든 번식을 독차지한다. 또한 1년에 4~5차례 한 번에 1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특이하게도 여왕이 선택한 짝 이외에는 병사와 일꾼이 된다. 놀랍게도 이들 몸의 성적 발달상태는 생식하기 직전에 머물러 있어 은밀한 교미를 위한 암컷과 수컷의 성 선택의 갈등은 아예 없다.
여왕 두더지가 어떤 수단을 통해서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개체의 성을 무력화하였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낮은 수준의 신체적 괴롭힘”을 통해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뇌를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번식을 통제한다는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평화가 깨져서 지옥 문이 열리는 날은 어떠한 이유로 여왕의 권력이 약화되어 무리에서 제거되는 날이다. 그후 서열 높은 암컷이 일주일 만에 성적으로 성숙해지고, 단 한번의 번식 기회를 잡기 위해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시작한다.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 포크스는 “벌거숭이두더지는 공산주의 사회에 가까운 유토피아의 훌륭한 본보기다. 하지만 그 뒤에는 온갖 흉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조용한 평화 뒤에는 동물 왕국의 극한적 폭력 리더십을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같은 진사회성 동물이지만 흰개미나 벌거숭이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집단의 평화보다 개인의 성공을 허용한 선택”이다. 이러한 이유로 완벽한 이타주의가 보장하는 집단 평화는 없고 개인의 이기심이 충돌하는 경계면에서 약자가 늘 희생당하는 어둠 속에 살고 있다.
참고 및 인용: 루시 쿡 지음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암컷들> pp.261-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