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시선] 이순신 장군의 ‘비분강개 주’는 어떤 술이었을까?

“소주를 마시면 순간의 힘이 펄펄 끓어 싸움박질하기 좋아하고, 막걸리를 마시면 은근한 힘이 생겨 오래 무엇을 하기에 딱 좋고, 와인을 마시면 술 같지도 않은 것이 은근히 사람을 주저앉혀 한없이 노닥거린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영화 ‘명량’ 포스터

 

식물 유전학에서 동종교배라는 말이 있다. 같은 품종끼리 오래 교배하면 종이 퇴화되어 품질이 나빠지고 이종교배를 하면 첫 세대는 부모의 우성형질만 고스란히 물려받아 좋은 종이 만들어진다는 이론이다. 난 동종교배의 모임을 ‘가슴 서늘한’ 모임이라 칭하고, 이종교배의 모임을 ‘가슴 떨린’ 모임이라 칭한다.

가령, 평생 함께한 직장 동료의 모임은 푸근함 못지않게 지루함도 많다. 새로운 주제가 발굴되기 전까지 과거만 파먹는 전형적인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맴돌 뿐, 낯섦이 주는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과 긴장감 없는 편안함에 다들 이 모임을 좋아한다.

반면에 도메인이 전혀 다른 사람과의 모임은 하는 말 듣는 말 모두가 생경하여 낯섦 투성이에서 오는 긴장감이 높다. 거기에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존심으로 절박함마저 든다면 진정 가슴 떨린 모임이 맞다. 그렇지만 버틸 힘이 없다면 이 또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이 지점의 두려움으로 다른 도메인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지난 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모임은 전형적인 “가슴 뛰는 사람과의 모임”이라 기꺼이 달려갔지만, 늘 새벽이면 눈이 떠지는 습관으로 늦은 저녁이 내 몸에 가한 충격은 상상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게 만들었다.

러시아 군대를 따라 모스크바로 간 나폴레옹은 텅 빈 모스크바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와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굶주린 프랑스군에게 승리의 환호보다 추위와 배고픔이 더 소중했기에 와인을 있는 대로 마셔서 힘 한번 못 쓰고 패배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있다.

“소주를 마시면 순간의 힘이 펄펄 끓어 싸움박질하기 좋아하고, 막걸리를 마시면 은근한 힘이 생겨 오래 무엇을 하기에 딱 좋고, 와인을 마시면 술 같지도 않은 것이 은근히 사람을 주저앉혀 한없이 노닥거린다.”

이건 세간의 말이지만 진실에 매우 가까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몽골 군대는 가는 곳마다 소주(燒酒)를 만들었고, 소주는 질 좋은 물이 있어야 하니 샘도 팠다. 몽골이 판 우물 곁에 몽고 우리 간장을 만들었으니 세상은 돌고 돈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사람은 멍청하게도 모임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 주재하는 사람의 성격이라 생각하지만,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술’이 모임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빠진 서러움을 극명하게 보인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보인 비분강개(悲憤慷慨) 주(酒)에서 어떤 술이 올랐는지 늘 궁금하다.

토요일 모임의 주종은 소주다. 양주를 꺼내 놓았지만, 양주의 폭발적인 도수를 확 줄여 소주 수준으로 도수로 낮추었고 거기에다 달달하게 만들어 홀짝홀짝 넘기기에 딱 좋게 만들었다. 소주의 안주에 적절한 고급스런 음식이 나오고 그 익숙한 음식 처럼 따뜻한 해우에 만족하고 딱 정상시간에 종료하였다. 소주가 갖는 공진화 파장만큼의 여운이 지속된다.

일요일 모임의 주종은 와인이다. 와인이 갖는 매력은 다양하다. 일단 국물이 없는 안주로 깔끔하다. 알코올 도수도 확 낮아 노닥노닥하기에 딱 좋다. 한번 생각해 봐라. 삼겹살이 구워지고 소주잔이 돌려지고 확 달아오른 얼굴로 어떻게 노닥노닥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와인잔이 쟁그렁 부딪히는 소리마다 터져 내야하는 촌철살인의 위트가 없다면 감히 촌닭이 되기에 십상이다. 이건 가장 격렬한 종류의 떨림 모임이지만 그만큼 여운도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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