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글을 미치도록 사랑해”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한글자씩 한글로 가로 3미터, 세로 1.5미터로 쓴 ‘윤동주의 꿈’ 제목의 설치작품. 

 

한 어미가 태몽을 꾼다. 태몽이 길하여 사내가 틀림없다며 그 꿈을 기록하고 사내를 낳는다. 사내가 태어나자 온 집안에 경사가 벌어졌다. 태어난 사주를 기록한다. 남자를 귀하게 여기는 시절이라 가까운 친척, 먼 친척이 찾아와 축하하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더불어 놀았다. 이 또한 집안의 경사라 자세히 기록한다.

할아버지에게 손자는 사대부 집안의 사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는 데자뷔라 더욱 아끼고 사랑하여 그 일을 기록한다. 그리고 아이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름을 ‘개똥’이라 천하게 지어 준다. 아이는 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책을 읽는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가며 이웃 양가의 아리따운 처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아름다운 모습,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 바라만 봐도 떨리는 마음, 길가의 돌멩이에도, 들녘의 이름 모를 꽃에도, 지나가던 비렁뱅이에도 따뜻한 정을 느낀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런 마음을 양갓집 처녀에게 글로 보낸다.

이 두 사람은 주변의 시기와 질투, 부러움을 무릅쓰고 천생연분을 맺는다. 많은 사람이 음식을 내오고 잔치를 벌인다. 어느 가문의 한 사내가 어느 가문의 한 여인과 혼사를 하니, 아랫동네 재종이 쌀을 한 말 가져오고, 윗동네 삼종이 들기름을 한 되를 가져오며, 아랫동네 이씨가 단술을 한 동이 가져왔다고 자세히 기록한다.

이 사내는 타고난 영특함으로 벼슬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그 나라가 어떻게 건국하였으며, 어느 왕이 누구와 혼인하여 누구를 낳아 몇째가 나라를 이었고, 그 왕이 어떤 선정을 베풀었으며, 가뭄이 언제 들고 홍수가 언제 끝났는지를 배운다. 그 나라가 어떻게 통치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법을 배우고 세금을 징수하는 방법을 배운다.

특히 이웃 나라는 그 나라에 유교라는 거대한 통치 수단을 전해 주었기에 자신의 나라보다 더 상세히 배운다. 그도 사대부 이전에 한 사내라 다정다감하여 지인들과 어울려 시를 짓고 기문을 남긴다.

이제 그는 나이가 들자 벼슬을 그만두고 산림에 은거하여 손자를 돌보며 손자의 사랑을 글로 남긴다. 이 아이가 커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자세히 기록한다. 또한 이웃 동네의 아이들을 모아 학교를 열고 자기가 태어났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문자와 문장을 가르친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마지막에 도달한 것 같다. 그 사내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기록이 담긴 거대한 족보를 읽고, 그 빈칸에 자신의 기록을 남긴다. 태어날 때는 혼자지만 죽을 때는 혼자가 아니며, 왔던 곳은 엄마의 자궁이지만 되돌아가는 곳은 자연이 아니라 문벌이라는 것을 안다. 그의 아들과 손자, 그의 제자는 행장을 기록하여 무덤 앞 비석에 새긴다.

이 모든 기록, 태몽, 출생, 읽은 책, 편지, 시, 여행기, 역사, 문학, 족보, 행장, 묘비명이 한문(漢文)으로 되어있다. 그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보고 배운 것은 오직 단 하나의 문자 한자(漢字)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왕이 태어나 그들이 배운 형태의 문자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문자를 만들고 이 모든 기록을 이 문자로 기록하라고 명령한다. 문자를 아는 모든 벼슬아치는 반대한다.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조상의 모든 기록이 이 문자로 되어있는데,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왕들의 기록이 모두 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이 태어날 때의 사주와 죽을 때 묘비명마저 모두 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이 배운 학문이 모두 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다른 문자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한글이다.

“그 충격의 정도를 유추해 보면, <정음(正音)>의 제기는 오늘날 일본어의 표기 문자인 ‘가나’를 모두 ‘조지아(그루지야) 문자로 바꾸자’ 혹은 ‘아랍 문자’로 하자는 것과 같은 충격이다. 아니 그 이상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본 적도 없는 문자로 쓰자는 것이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쓰인 적이 없었던 ‘말해진 언어’를 쓰겠다고 한다.”

혁명 중 혁명, 이런 혁명은 없었다. 하지만 후손들은 여전히 그 문자의 거대한 네트워크에 빠져 새로운 글을 업신여겼고, 서양의 제국주의가 물밀듯이 자기의 영토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되었다. 1894년 조선에 들어 온 이방인의 눈에 한글은 며칠만 쳐다보면 익힐 수 있는 신기한 문자라고 여겼다. ‘신기’한 문자가 아니라 ‘기적’의 문자다.

왜 그랬을까?

문자에도 경제성이 있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족보는 한 세대가 지나야 바뀐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왕들의 기록은 왕이 죽어야 바뀐다. 그들이 하늘처럼 떠받들었던 경전은 배운 이후로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사랑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는 그 문자로 기록하기에는 경제성이 너무 떨어져 기록하지 않았다.

그 시대는 변하지 않는 것들로 가득했고 변해서는 안 되는 시대였다. 그 문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를 단절시킬만한 힘이 없었고 대체할 만한 그 무엇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말과 문자가 서로 다르지만 견딜 만했다. 그러니 아무리 쉬운 문자가 나와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먼 이방인이 가져온 실용적 학문, 군사학, 경제학, 지리학, 과학, 의학, 기술은 새로운 사실이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사실로 기록하여야 하니 그들의 소중한 네트워크를 단번에 단절시키고도 남을 만큼 풍부했다.

한문이라는 문자는 배우기가 참으로 어렵다. 한문이라는 문자로 시문을 짓기에는 더 어렵다. 영특한 아이가 태어나서 이 문자를 배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족히 20년, 이 문자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속하기에는 너무나 경제성이 떨어지는 언어가 되었다.

우리에게 한글은 산업사회라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기회가 되었고, 이제 또 다른 네트워크 디지털 시대에 접속하여 새로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세상 어느 문자가 “‘토독토독’ 단풍에 부딪히는 안개 소리”, “하늘 ‘묘묘하니’ 웃고 싶어지는 꽃밭이로구나”, “비녀를 ‘쑥’ 꽂은 듯 산에 핀 첫 벚꽃” …이런 감성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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