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차마고도②] 산이 아무리 높아도 강을 건너지 못하고
“오 위대한 안데스의 콘도르여, 날 고향 안데스로 데려가 주오. 콘도르여 콘도르여, 돌아가서 내 사랑하는 잉카 형제들과 사는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오. 콘도르여 콘도르여”
7천만년 전 인도 대륙이 판게아로부터 갈라져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라시아판과 충돌해 해발 8,000미터 이상의 티벳고원을 만들고, 티벳고원이 끝나는 이곳에 격렬한 지각변동이 발생해 주름진 협곡을 만들었고…
이슬비 내리는 중도객잔(中途客棧)에서 운해가 진사강(金沙江) 너머 옥룡설산 허리를 비단결처럼 휘감아 도는 풍경을 마주하고, 시끌벅적한 마방(馬幇)들의 요란한 소리도 아니요, 잔뜩 짐을 진 말의 힘겨운 말 방울 소리가 아닌 플루트로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를 전 대구문화예술관장 박재환님이 연주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새인 안데스의 콘도르를 타고 진사강을 건너면 설산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설산으로 들어가면 배고픔도 없고, 아픔도 없고, 근심 걱정 없는 샹그릴라를 찾을 수 있을까? 박재환님이 왜 엘 콘도르 파사를 연주했는지는 모르지만, 겸재 정선을 불러 진경산수화를 그려도 이보다 더 아름답게 그릴 수 없는 설산을 마주하고, 귀로는 음악을 듣고 눈으로는 운해를 바라보며, 점점 더 짙어가는 어둠 속에 점점 요란해지는 강물 소리로 플루트 소리마저 희미해져 간다.
인간이 길을 만든 이유는 단 세 가지, 돈과 사랑 그리고 전쟁이다. 차마고도는 윈난성 차와 티베트 말을 맞바꾼 교역로로 실크로드보다 먼저 만들어진 길이다. 역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입는 것보다 먹는 것, 그것이 더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티베트는 해발 5000m가 넘는 고원지대로 곡물이 자랄 수 없다. 인간에게 절대로 필요한 비타민, 이를 위해서는 차가 필요했고, 윈난성 사람에게는 질 좋은 말이 필요했다. 실크로드가 동서양의 교역로라면 차마고도는 윈난성과 티베트,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다. 교역로는 돈의 흐름이다. 그 돈을 좇아 강을 건너고 설산을 넘고 벼랑길 한 가운데에 선다.
아무리 강이 깊고 산이 높아도 만날 사람은 만난다. 그리움 때문이다. 그리움이 모여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따라 마을이 만들어진다. 언제나 길 맨 끄트머리에 매달린 물체는 스쳐 지나가는 광장도 아니요, 잠시 기도하는 교회도 아니요, 되돌아가는 학교도 아니요, 애걸하는 관공서도 아닌 집이다. 길의 최종은 사랑이기에.
몽골 10만 대군이 남하를 시작한다. 대리국을 평정하기 위해서다. 몽골은 여진족의 금(金)을 멸망시켰지만, 한족의 송(宋)은 여전했다. 몽골은 한족과 이민족을 분리하기로 결정하고, 쓰촨성 시창(西昌)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대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파른 협곡 진사강이었다. 대군의 도강이 난감해지자, 궁핍은 혁신을 만든다. 나무로 다리를 만들 수 없자, 양가죽으로 배(革囊, 거낭)를 만들어 도강 한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길이 있으면 길을 따라 군대는 진군한다. 전쟁은 거대한 권력이기에.
나는 빵차를 타고 차마객잔에 올라 트레킹을 시작해 중도객잔에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다시 트레킹을 시작하여 관음폭포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트레킹과 순례(巡禮)의 차이는 단 하나, 트레킹은 돌아갈 집이 있고, 순례는 돌아갈 집이 없다. 떠난다는 목적은 같으나, 돌아올 귀의처(歸依處)는 다르다. 트레킹이 몸의 여행이라면, 순례는 영혼의 여행이다. 떠날 때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오면 여행이지만, 떠날 때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면 순례다.
나는 설산으로 순례를 떠나지 않고 서울로 되돌아왔다. 내가 내 영혼을 찾았다고 언빌리버블! 그렇지만 중도객잔에서 지나가는 바람과 몰려오는 구름, 잔잔하게 깔리는 어둠과 푸른 행성의 여명을 보러 다시 갈 것이다.
*3부 ‘차마고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로 이어짐. 위 사진은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까지 트레킹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