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차마고도 기행①] 미시의 세계에서 거시의 세계로

연암 박지원

1780년 7월 25일(음력 6월 24일) 연암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너 40일만에 북경에 도착하니 건륭 황제는 420리밖 열하로 떠나고 없다. 북경에서 다시 밤낮없이 꼬박 닷새 만에 열하로 떠난다. 하지만, 열하에 도착한 사신에게 황제는 또다시 티벳 라마 성승(聖僧)인 반승에게 예를 올리라고 명령한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니 어찌 불교 라마승에게 예를 올릴 수 있는가? 만약에 예를 올렸다가는 귀국하여 탄핵당할 것이 뻔한 일이고, 황제의 명을 거역하였다가는 다시 귀국하지 못 할 일이니 이를 어찌 진퇴양난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암은 자신의 연행 243년 후 조선의 한 무리가 방문해 거리 풍경을 담담하게 담아가리라고 상상했을까? <사진 윤일원>

그러자, 연암은 내심 생각하기를 “지금 사신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황제의 말을 거부하는 상소를 올린다면 의롭다는 명성을 천하에 알릴 것이고 나라를 크게 빛낼 터이지, 그러면 황제는 군대를 보내 조선을 칠 것인가? 아니지 사신의 잘못이니 귀주(貴州)나 운남(雲南)으로 귀양을 보내겠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에 그는 조선인 최초로 국경밖 1만여 리를 여행하는 기쁨에 젖어 데리고 온 마부에게 “속히 가서 술을 사 오너라, 쩨쩨하게 돈 아끼지 말고”라고 한다.

지난달 중순 대구 산학연구원 사무총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박사님, 차마고도 안 가실래요?” 이 한마디로 시작된 운남성(雲南省) 7박 8일 여행, 차마고도의 차마객잔, 중도객잔, 호도협, 옥룡설산의 운삼평, 남월곡, 인상여강쇼, 여강 시내의 흑룡담 공원, 여강고성, 나시족의 옛마을 속하고진, 백사고진, 쓰촨성 성도의 무후사, 금리거리, 낙산 대불 등 연암 박지원이 그토록 꿈에 그리워했던 조선 땅 밖 1만여 리를 구경하고 귀국했다.

차마고도의 연주자 <사진 윤일원>

여행은 극명한 컨트라스트다. 국가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 입국 절차를 마치는 순간, 내 몸은 한국이 만들어 놓은 모든 정치와 문화의 구조에서 중국이 만들어 놓은 정치와 문화의 구조속으로 들어간다. 불연속 단절 경계면을 타고 흐르는 낯섦이 주는 충격, 다름(different)이 아니라 틀림(wrong)의 거대한 변화다.

<사진 윤일원>

여전히 익숙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의 시스템을 경험하는 일은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한 것은 잠시 잠깐의 불편함 때문이다.

여행은 낯섦의 충격이다. 문화 때문이다. 이것은 틀림(wrong)이 아니라 다름(different)이다. 그들이 입는 옷에서 헤어 스타일까지, 따뜻한 차에서 기름진 짜고 매운 음식까지, 개방된 공간에 쪼그려서 앉는 화장실에서부터 비데가 설치된 호텔의 양변기까지, 깍두기 머리에 올챙이 배를 한 남자들 스타일에서 미국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여성들의 패션까지, 길거리에서 호텔까지 담배를 피우는 문화, 차안에서 식당까지 공장 소음을 능가하는 시끄러운 말소리 등 이건 분명 다름이라 우리가 그들을 비난할 수도, 그들을 못났다고 핀잔줄 수도 없다.

차마고도의 한 사찰에 가는 사람들. 각양각색이다. <사진 윤일원>

여행은 편견을 벗는 일이다. 성찰 때문이다.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바라봐야 그들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비교 의식, “이것은 어떻고, 저건 저떻고” 보이는 사물마다 비교하여 품평을 내리는 일은 여행이 아니라 고리타분한 불평의 연속이다.

<사진 윤일원>

분명 비포와 애프터가 존재하는 중국, 과거의 화려한 농경문화 지존을 존경해서도 안 되고, 지금의 싸구려 사회주의 국가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차마고도의 웨딩사진 <사진 윤일원>

우리나 중국인이나 모두는 거대한 세 개의 판때기 위에서 삶을 영위한다. 맨 위판은 겉으로 드러난 미시의 행동양식이고, 한 가운데 판은 그 나라가 만들어 놓은 정치와 경제, 문화라는 제도, 이용후생이라는 과학 기술, 외교와 군사라는 거시의 틀이 있고, 맨 아래 판은 인간 본성이 있다.

차마고도 거리 풍경 <사진 윤일원>

어디 개인 자체가 선하고 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 모두 태어나서 배우고 사랑하고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으려 애쓸 뿐이다.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기에.

*2부 ‘차마고도, 산이 아무리 높아도 강을 건너지 못하고’로 이어집니다. 위의 사진들은 필자가 차마고도에서 마주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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