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시선] 광복절에 다시 보는 겨레의 꽃 ‘무궁화’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방학동 필자 고향집에 핀 무궁화 자태가 아름답다. <사진 윤일원>

[아시아엔=윤일원 <맹꽁이도 깨달은 천자문> 저자, 트러스트랩 대표, 국방부사이버대응전력팀장 역임]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가 있다. 한국은 무궁화(無窮花), 영국은 장미, 북한은 참꽃 진달래, 일본은 벚꽃이 아니라 국화(菊花)다.

애국가의 후렴에도 당당히 들어있는 꽃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그런 무궁화를 찾아 홍릉 수목원에도 가보고 광릉 국립수목원에도 가보았지만, 필자의 시골집 앞마당을 당당히 지키고 있는 무궁화만 못했다.

겨레를 지키는 국방부, 그곳 국방부 청사 내 깊숙한 곳에 무궁화가 아니라 아예 ‘무궁화동산’이 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금지된 구역, 대통령 집무실이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龍山)은 용(龍)과 산(山)으로 이루어졌으며, 용(龍)이 된 이유는 이곳에 올라서면 한강과 남산 그리고 남대문, 그 너머 경복궁이 아스라이 보이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또 산(山)이 된 이유는 꿈틀거리는 용 모양의 구릉 한가운데 가장 높은 머리에 해당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용산에서 제일 높은 곳, 이곳 정상에는 정자가 있고, 산 사면에는 아름드리 엄나무와 왕벚나무, 토종 모과나무, 산수유가 있다. 그런 곳에 무궁화동산이 꾸며진 것은 안보를 책임지는 부처만큼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싶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화(國花)이거늘, 어찌 국방부가 이를 소홀히 한단 말인가?

그 충성의 뜻은 갸륵하나, 깍두기 총각무와 같은 무궁화나무, 이 무궁화나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뜻이 아무리 높아도 이용후생(利用厚生) 지식이 없다면, 도덕 하나만을 부여잡고 나라를 지키려 했던 선조들만큼이나 허무하기 때문이다.

내 허리 아래 크기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무궁화 원기둥을 잘라내고, 그 위에 몽땅 빗자루처럼 무수히 많은 잔가지를 볼 때마다 참으로 무식함에 눈물이 난다.

안동시 필자 고향집 무궁화. 나무 모양이 배롱나무 비슷하다. <사진 윤일원>

내가 아는 무궁화는 배롱나무처럼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꽃이다. 그런 무궁화나무는 그냥 내 버려두든지, 아니면 작은 가지만 솎아 수형만 다듬으면 된다. 왜 이런 무궁화가 자라지 못하게 해마다 자르고 잘라 진드기만 잔뜩 덮어쓴 오종종한 무궁화로 만들었을까?

이건 용감 무식하게 제초작업을 하는 국방부 헌병의 잘못이 분명 아니다. 제법 안다고 하는 근무지원단 임업기사의 짓이 분명하다. 내가 ‘행위’가 아니라 ‘짓’이라 불러야 할 그 속된 것을 알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일본은 나무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른다. 분재술(盆栽術)이다. 나무의 고유 품성에 나무가 잘 자라도록 살짝 거드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인위적으로 가지를 이리저리 휘어 고정시키고 굵은 원기둥만 남기고 모두 잘라내 작은 가지 한두 개만 남김으로써 극도의 컨트라스트를 만드는 기술이다.

그런 일본인이 조선 땅을 지배하자, 선진 신문물을 선보일 요량으로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성하게 잘 자라는 무궁화를 가져다가 전지가위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무궁화는 자르면 죽는 성질이라 금세 시들시들 해지고 볼품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시골 고향 집 앞마당에는 큰 누님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집집마다 심으라고 할 무렵 심어졌다고 전해지는 무궁화 한 그루가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잘 자라고 있다. 꽃은 작지만 옹골차게 아름다우며, 무궁화답게 매우 오랫동안 피고 진다. 도시의 총각무와 같은 가여운 얼굴이 아니라 귀공자티가 풀풀 나는 겨레의 무궁화다운 모습이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필자 고향집 무궁화. 활짝 폈다 지는 모습도 만만치 않다. 우리 겨레의 기상을 닮아서일까? <사진 윤일원>

여기에 백성들은 일본의 미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일본은 조선의 정기를 자르기 위해 무궁화마저 마구마구 자른다”고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일본인이 나무에마저 정기를 갖다 붙이는 주술가적 행태가 아니라, 그들은 비가 많이 내리는 섬나라 특성상 나무를 잘라내지 않으면 썩어 문들어지는 현상을 조선에 고스란히 잘못 적용한 것뿐이었다.

이런 잘못된 방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의 원예 기술자들도 꽃나무만 보면 전지가위를 서슴지 않고 들이대는 남용으로 ‘겨레’의 무궁화가 아니라 ‘길거리’의 무궁화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시골 고향 집 앞마당에는 큰 누님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집집마다 심으라고 할 무렵 심어졌다고 전해지는 무궁화 한 그루가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잘 자라고 있다. 꽃은 작지만 옹골차게 아름다우며, 무궁화답게 매우 오랫동안 피고 진다. 도시의 총각무와 같은 가여운 얼굴이 아니라 귀공자티가 풀풀 나는 겨레의 무궁화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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