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촉] 거미보다 더 드라마틱한 섹스 있을까?
흥얼거리는 그룹 비지스의 ‘Staying Alive’ 마지막 가사는 흥겨운 리듬과 달리 “삶은 목적 없이 흐르니 누군가 날 도와줘. 살아만 있도록” 하는 간절함이 물씬 묻어있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다오, 제발 살아서 돌아와만 다오.” 빗물이 쏟아지는 흙탕물 강에 실종된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말도 아니며, 무너진 지하 2천 미터의 갱 속에 갇힌 사북탄광의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울부짖음은 더구나 아니다.
거미 엄마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거미의 암컷은 교미 도중에 수컷을 열에 아홉은 잡아먹는다. 그렇게 애써 낳은 아들이 또다시 남자가 되어 사랑할 때 열에 아홉은 암컷에게 잡아 먹히겠지만, 그래도 살아남기 바라는 엄마의 심정은 인간이나 거미나 똑같지 않을까?
“암컷은 육즙이 넘치는 작은 수컷이 도착하면 즉시 복부에 독이 든 송곳니를 찔러 소화액을 토해낸다. 그런 다음 연인의 엉덩이를 먹어 치우기 시작하는데, ‘하얀색 작은 덩어리’를 뱉을 때만 잠깐씩 멈춘다. 그 사이 숫놈은 죽어가면서 머리 쪽에 있는 더듬이 다리로 암거미에게 정자를 뿌린다.”
정말 장엄하지 않는가? 이보다 더 극적인 장면은 없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섹스 장면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 자연은 이렇게 거미에게 진화하도록 만든 것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것이 이들 종에게 이롭다는 것만 알 뿐 인간 해석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수거미에 있어 혼례 첫날밤은 첫 환희이자 마지막 죽음이지만 의외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체위다. 우선 신혼집이 공중 거미줄이고, 몸집에 기다란 다리가 8개 있고, 수컷은 암컷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몸집이 작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체위는 ’69형’으로 수컷이 더듬이 다리에 있는 정액을 암컷 몸에 있는 두 개의 생식기 구멍에 집어넣으면 끝이 난다. 물론 이 체위를 만들지 못하면 신혼집을 차리기도 전에 디저트로 잡아 먹힌다.
이들 신혼 첫날밤은 대략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수컷이 용케 죽음의 거미줄을 건너 신혼집에 도달하여 자신의 생식기인 더듬이 다리 두 개 중 하나를 암컷의 생식기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암컷은 수컷을 잘근잘근 씹어 일부는 소화가 된 상태로 만든다. 대략 30분가량 사랑을 나눈다.
2부에 앞서 수컷은 이미 반쯤 암컷에게 사라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떨어져 10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신혼 방으로 되돌아 두 번째 더듬이 다리를 암컷 생식기에 삽입하고 힘겨운 애정 행각을 1부 때처럼 한다. 수컷의 마지막 황홀함이 끝나갈 무렵 두 번째 더듬이 다리를 암거미에서 뽑아내면, 암거미는 연인의 남은 몸뚱이를 거미줄로 잘 싸서 느긋하게 저녁으로 먹어 치운다.
거미에 있어 사랑은 분명히 목숨을 건 사랑이고 살아서 돌아와야 하는 전쟁이며, 암컷과 수컷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진화되었다. 남녀가 왜 이렇게 서로 속고 속이는 방법으로 진화되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른다. 어쨌든 이 방법이 생존전략에 도움이 되었고, 암컷이 나를 이렇게 죽이면 나는 저렇게 대응하는 끝없는 진화적 군비경쟁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생각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