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시선] 따로 똑같이…”요셉 형제, 외롭더라도 의로움 잃지 않길”
요셉 형제, 생일 축하한다. 요셉은 광복절날 받은 큰놈 세례명이다. 형제는 의로운 사이일까? 외로운 사이일까? 역사가 말한 것처럼, 권력이라는 지독한 인간 본성을 앞에 두고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일을 벌인 것도 사실이다. 막장 드라마 단골 주제도 재벌가의 형제 다툼인 것을 보면 이 또한 만만찮은 사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만큼 서로를 잘 알기에 의로운 사이도 되지만, 외로운 사이도 된다.
조선시대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이 쓴 육아일기가 있다. 아비나 어미가 쓴 것이 아니라 조부가 썼다. 이문건은 외아들이 죽자 16년 동안 손자를 돌본다. 이문건은 아들에 대한 바람이 너무 커 천연두로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가혹할 정도로 훈육한다. 그런 아들이 죽자 할애비는 지극정성으로 손자를 돌본다. 손자 역시 할애비의 훈육을 견디지 못한 건 아비와 마찬가지였다.
이문건은 “늙은이의 포악함은 실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를 마지막으로 일기를 그만두었지만, 손자 이수봉(李守封, 1551~1594)은 할애비의 바람처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크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다.
우리 집에는 아직 육아일기를 보관하고 있다. 엄마가 쓴 일기다. 큰 놈이 언제 밥 먹고, 언제 똥 싸고, 언제 예방접종을 했고 또 옹알이는 언제 했고, 첫걸음마는 언제 뗐는지를 기록했다. 모두 아기 첫 행동이다. 기쁨이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다가 미운 4살이 되면 일기를 접는다. 이제 일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노동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아들만 둘이다. 큰놈은 겉보기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고집이 세 다루기가 힘들지만, 한번 길든 품성은 그대로 이어갈 정도로 단순하다. 반면 둘째는 겉보기에는 양처럼 온순하여 고분고분하지만, 안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부모인 우리도 모른다.
큰놈 방은 부엉이 집처럼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여서 그냥 두지만, 방을 나올 때는 온갖 깔끔한 체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둘째는 한번 세팅된 방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냥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온다. 그런 성격처럼 입는 옷도 수더분하여 양말이 빵구가 나야 갈아 신을 정도다. 서로 외모만큼 성격도 다르다.
엊그제 이른 산책 도중에 큰 누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한날한시에 나란히 믿음이 들어 한날한시에 세례를 받았느냐”고. 형제는 용감하다고 깔깔 웃었다고 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형제가 나란히 같은 건물 바로 옆 사무실에 근무한다. 둘다 서울에 직장 얻은 것도 신기한데 둘째 놈이 먼저 집 근처로 왔다. 뒤늦게 지방에서 서울로 갈아탄 큰 놈도 서울로 오고 보니 또 옆 사무실이었다. 놀려먹기를 좋아하는 사촌들이 내기하면서 “서로 모른 체 한다”에 한 표를 던지면서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에 황당하기는 나와 마찬가지다.
우연을 핑계로 나란히 함께 발생한 일이 또 있다. 내 지론은 “자식놈들 도와주려면 막 발버둥칠 때 도와주자”이다. 나이 들어 죽을 때 물려줘 봐야 그놈들도 이미 오십을 훌쩍 넘은 나이에 그게 무슨 소용이리오. 어떤 친구가 내게 “윤박, 자식 다 주고 나면 안 와” “난, 안 오는 게 편해, 진짜로. 일년에 3번만 딱 오면 좋겠어. 명절 때, 생일 때, 부친 기일 때.”
그래서 나는 신용자산이 가장 높은 현직에 있을 때 가용한 신용 자산을 모두 털어 작년에 10평 남짓 안 되는 작은 빌라를 큰놈에게 사 줬다. 그러다가 어머님이 편찮아 병간호하고 큰일 다 치르고 나자 새 물건이 나와 둘째 놈 것을 얼른 사고 등기를 치고 보니 아뿔싸, 바로 나란히 옆에 붙은 동이 아닌가. 언빌리버블.
난, 형제 사이라도 너무 딱 붙어 있으면 경쟁이 없어 물러 터지고, 그렇다고 너무 냉랭하면 힘든 시기 견뎌내기 어려운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따로 똑같이 균형과 견제가 되는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