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나는 무수히 봐 왔다. 재직 중 국가에서 준 학비로 외국 유명대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하고,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 전문성을 갖춘 사람도, 혹여 퇴직 후 비리를 저지를까 봐 아무 것도 못 하게 만드는 이 규정 때문에 논다. 백성을 무욕(無欲)에 들게 하여 무지(無知)하게 만들면 개인은 행복하고 나라는 잘 살까?”(본문 가운데) 사진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욕심 없음과 지족 혹은 자족

광복절 전날,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안내’라는 내용으로 “퇴직일로부터 3년 이내 인사혁신처에서 고시하는 ‘취업심사대상기관’에 취업희망시에는 사전에 취업 심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취업예정일 2달 전 문의 요망) 위반 시 과태료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으니 유의하여 주시기바라며, 문의 사항이 있으신 경우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한다.

나는 무수히 봐 왔다. 재직 중 국가에서 준 학비로 외국 유명대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하고,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 전문성을 갖춘 사람도, 혹여 퇴직 후 비리를 저지를까 봐 아무 것도 못 하게 만드는 이 규정 때문에 논다. 백성을 무욕(無欲)에 들게 하여 무지(無知)하게 만들면 개인은 행복하고 나라는 잘 살까?

언빌리버블! 그래서일까 퇴직 공무원이 취직하는 경우는 일회성 공원 관리나, 자격을 갖춘 부동산 중개인이거나, 고향에서 농사짓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런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제한하는 잘못된 규정 하나로 한평생 국가에서 키운 인재를 낭비하는 것도 모자라, 3.0, true color 시대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려 국가 재정만 축내는 악순환만 가져온다. 이제는 모두 금지하는 opt-in 규제에서, 금지한 것 이외는 모두 할 수 있는 opt-out 규제로 바꿔야 한다.

우리는 안다. 언제나 선량한 다수가 문제가 아니라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잘 난 몇 놈이 문제라는 것을. 그렇게 수많은 감사기관, 감찰기관, 위원회가 선량한 다수의 불법을 막겠다고 가두리 양식장처럼 전체를 금지해 놓지만, 아웃라이어는 언제나 아웃라이어, 이놈은 시스템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모든 것을 금지하는 opt-in 방식에서 탈피하여 몇몇만 금지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opt-out으로 대전환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한때 ‘행복=기대치/욕망’이라는 공식이 유행했다. 욕망을 0으로 만들면 행복은 무한대로 된다. 기대치가 아무리 높아도 기대치보다 욕망이 더 앞질러 나가면 언제나 불행하다. 이 공식을 보고 “옳거니, 천하의 인생공식도 별거 아니네” 하였지만, 이 공식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욕망을 통제하여 행복을 증대시키는 방법은 없는 사람의 변명 같아 너무 없어 보인다. 팽팽한 긴장감도 없다. 늘어나는 몸무게로 한 치수 옷을 줄이기 위해 숨을 참아가면서 간신히 배를 꾹 눌려야 하는 긴장감도 없고, 끝없이 샘 솟는 식탐을 억제하기 위해 애써 밥 한술을 외면하는 안간힘도 없다. 없으면 행복하다고? 아니다. 아니야.

모든 것을 다 갖출 만큼 넉넉한 집안이라도 줄이고 줄여 텅 빈 냉장고를 만들 줄 알아야 하고, 온갖 너저브레하게 쌓인 거실의 잡동사니를 버리고 또 버려 텅 빈 거실을 만들 줄 알아야 진정 행복이 나온다. 행복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터져 나오는 지족(知足)이다. 스스로 족함을 알고 그만두는 삶, 그런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