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시선] 안성 바우덕이축제…”어름사니, 아무리 아파도 떨어지면 안 돼”

안성 바우덕이 <사진 윤일원>

나는 여자로서 이름은 김암덕(金岩德)이다. 가난한 머슴의 딸로 태어나 일찌기 꼭두쇠의 눈에 띄어 염불과 소고춤, 줄타기를 배웠다. 그때 내 나이 다섯 살, 내가 사는 고장은 안성장터로 소설 <허생전>의 본향이다.

왜 경기 안성이냐고? 안성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안성천을 따라 가면 서해 바닷길이 닿아있고, 신작로를 따라 가면 영남과 호남을 만나게 되니 일찍부터 조선 3대 장터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 터를 잡지 않을 수 있을쏜가?

안성 바우덕이 <사진 윤일원>

내 몸은 너무 가냘파 가끔은 나비와 같다고 한다. 맞다. 나는 나비가 되어 하늘하늘 하지 않으며 서 있을 수조차 없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합죽선(合竹扇)이 전부, 바람을 가르며 수시로 접었다 폈다를 한다.

안성 바우덕이 <사진 윤일원>

내가 걷는 길은 너른 신작로도 아니요, 잡풀 무성한 오솔길도 아니며, 겨우 어른 손톱 두 개만 한 넓이며, 내가 걷는 길은 튼튼한 대나무 두 개를 서로 얽어 양쪽에 세우고, 어른 키 한배 반보다 더 높은 곳에 출렁이는 줄이며, 내가 걷는 길은 어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 여덟 걸음이면 족히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안성 바우덕이 <사진 윤일원>

나는 반드시 혼자 걷는다. 혼자 걸으면 무섭고 힘이 들어 꽹과리와 징을 치고 북과 장구를 두드리며, 날라리(태평소)를 불어 젖혀 흥을 돋워줘야 한다.

어느 날 임금이 궁궐을 다 지었다고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신이 나서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때 꼭두쇠가 죽자 여자인 나를 꼭두쇠로 앉혔다. 우리 일행은 대략 40~50명으로 여자인 내가 조선 최초로 꼭두쇠가 되다니, 언빌리버블! 그때 내 나이 불과 열다섯, 정말 꽃다운 나이였다.

안성 바우덕이 <사진 윤일원>

우리는 누구인가? 청나라 사신이 왔을 때 관아에서 여흥을 돋아주려고 불렀던 광대도 아니요, 명절 때마다 임금이 사는 궁궐로 불려 가 놀아주는 광대도 아니요, 양반집이나 부잣집 잔치에 불려 가 돈 받고 놀아주는 광대는 더욱 아니다. 그저 오일장이 열리는 팔도를 떠돌아 다니면서, 백성이 힘들어하거나 백성이 즐거우면,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기꺼이 놀아주는 떠돌이 남사당패다.

내 공식 직함은 어름사니이다. 어름사니는 ‘얼음’과 ‘사니’을 합하여 만들었으며, ‘얼음’은 마치 살얼음 위를 걷듯이 아슬아슬 신비한 재주를 부려야 한다는 뜻이며, ‘사니’는 행하는 기술이 너무 어려워 신(神)의 경지라 하면 경망하니 신과 인간의 중간 단계인 ‘사니’를 갖다 붙였다.

나는 단순히 줄만 타는 광대가 아니다. 왜냐고? 나는 장단에 맞춰 줄을 타면서 소리꾼으로 재담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몸과 줄이 한 몸이 되고, 내 허벅지 힘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하늘을 날 것 같으면 나는 갑자기 펄쩍 뛰어올라 가랑이 사이로 줄을 집어넣고, 내 몸무게의 반동으로 줄의 탄력을 만들어 하늘로 높이 치솟으면서 다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또 몸을 하늘 높이 치솟은 다음 두 발을 머리 위로 찬 후 몸을 휙 돌려 뒤로 앉으며 관객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본문 중에서)

자, 이제 신명 나게 한번 놀아 볼까? 땅바닥에 매인 줄을 타고 살금살금 올라가니 오른손은 합죽선이요, 왼손은 살짝 오므렸다. 두 팔을 어깨높이만큼 올리고, 왼쪽으로 기우뚱하면 얼른 부채를 오른쪽으로 휘둘러 나비처럼 끊임없이 팔락거린다. 두 발은 살짝 어긋나게 상큼상큼 걷지만, 파르르 쉴 새 없이 떨리는 줄을 잡기 위해 독수리 발톱처럼 발바닥을 웅크려 동아줄을 꽉 잡는다.

나는 외줄 위에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떨어질 듯 휘청거려 구경꾼의 숨을 죽이게 한다. 그런 다음 오른쪽 발만 줄 위에 올려놓고 왼쪽 발을 노 젓듯 앞으로 휘휘 젖어 깡충깡충 뛰어간다. 또 오른 정강이를 줄 위에 얹은 다음 왼발로 줄을 밀어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내 몸과 줄이 한 몸이 되고, 내 허벅지 힘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하늘을 날 것 같으면 나는 갑자기 펄쩍 뛰어올라 가랑이 사이로 줄을 집어넣고, 내 몸무게의 반동으로 줄의 탄력을 만들어 하늘로 높이 치솟으면서 다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또 몸을 하늘 높이 치솟은 다음 두 발을 머리 위로 찬 후 몸을 휙 돌려 뒤로 앉으며 관객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내 이름은 김암덕(金岩德), ‘안성남사당패’를 ‘바우덕이’로 바꾼 인물이다. 나는 임금이 궁궐에서 팔도 잔치를 벌일 때 일등을 하자, 내게 정3품 당상관 벼슬을 내리고 옥관자를 하사하였다. 왜, 정3품 당상관을 주었느냐고?

“어디 만백성이 안 아픈 백성이 없으며, 아프면 떨어지기 마련인데, 떨어지지 말고 두 발을 줄 위에 딱 붙이고 살라고”

그런 나는 22살 어린 나이에 폐병으로 죽자, 우리 패는 안성 청룡사 양지바른 곳에 나를 묻어주었다.

*사진은 2023 안성 바우덕이 축제 모습(202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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