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발가벗고 헤엄치는 사람들

“혼자 잘나 권세를 얻었다고 부림만 있는 사람, 능력 좋아 혼자 힘으로 돈 많이 벌었다고 짠내 내는 사람,​ 머리 좋아 일류대학 나왔다고 평생 우려먹는 사람, 높이 오를수록 어둠이 빨리 찾아오듯이, 그런 사람이 가장 먼저 어두움 속에서 헤매게 된다.”(본문 중에서) <사진 윤일원>

높은 산에 올라 가 봐야 다리의 힘을 알 수 있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가 봐야 키가 작음을 알 수 있듯이, 물이 빠질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을 치고 있었는지를 안다. 우리의 민낯, 여태 허세(虛勢)로 용케 버텨 온 사람들이 어디 권력자만 있을까?

천하에는 세 가지 도리가 있다고 한다. ​한비가 한 말이다. 진시황이 우연히 <한비자>라는 책을 읽고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하여 만나지만 어눌한 말솜씨로 유세에 실패하고, 순자(荀子)한테 동문수학한 이사(李斯)의 농간으로 독살당하기 직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첫째는 지혜(智)롭다고 해서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둘째는 힘(力)이 있다고 해서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셋째는 강(强)하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과 혼자 할 수 없는 일, 세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과 세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때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과 때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혼자 잘났다고 허세 부리다가 민낯이 드러나고 만다.

“어지러움(亂)은 다스림(治)에서 생기고, 비겁(怯)은 용감(勇)에서 생기며, 허약(弱)은 강함(彊)에서 생긴다.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수(數)’에 속하고, 용감함과 비겁함은 ‘세(勢)’에 속하고, 강함과 허약함은 ‘형(形)’에 속한다.”

<손자병법>에 나온 말이다. 역설을 잘 표현했다. 잘 다스리면 나라가 태평하지만 잘못 다스리면 나라가 난세가 되고, 세가 강하면 모두 용감한 사람이 되지만 세가 약할 때는 모두 비겁해지고, 조직이 잘 갖추어지면 저절로 강해지지만 조직이 허술하면 모두 허약하게 된다.

혼자 잘나 권세를 얻었다고 부림만 있는 사람, 능력 좋아 혼자 힘으로 돈 많이 벌었다고 짠내 내는 사람,​ 머리 좋아 일류대학 나왔다고 평생 우려먹는 사람, 높이 오를수록 어둠이 빨리 찾아오듯이, 그런 사람이 가장 먼저 어두움 속에서 헤매게 된다.

<천자문>에 이런 말 있다. 제89구 ‘省躬譏誡, 寵增抗極’(성궁기계 총증항극, 날마다 자기를 반성하고 살피며 총애가 더할수록 그 끝을 경계한다) 결국 이런 말 아니겠는가? “안팎을 살펴라. 안으로 살펴 성찰하고 밖으로 살펴 능력을 키워라. 안팎의 조화 없이는 성공도 없고 성숙도 없다.”

인간은 자연을 버리고 문명의 길로 들어섰고, 짐승은 문명을 버리고 자연의 길로 들어섰다. 문명의 길로 들어선 인간은 인위(人爲)의 모순으로 허덕이고, 자연의 길로 들어선 짐승은 약육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과 짐승의 유일한 차이는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다.

한 자밖에 되지 않은 나무라도 높은 산 위에 있으면 천 길을 발아래 굽어볼 수 있는데, 이는 나무가 높아서가 아니라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권세도 사라지고, 부도 사라지고, 학력도 사라질 때 발가벗고 헤엄친 민낯이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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