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2023년, 홀황했도다”

동강 <사진 윤일원>

한해 하루를 남겨 두고 또 한해를 되돌아본 느낌을 남기지 않는다면, 내 어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인생이다”라는 모토에 어긋남이 없지 않으리오? 올 한해를 사자성어로 남긴다면 ‘惚兮恍兮(홀혜황혜)’로다.

홀황(惚恍)을 파자(破字)해보면, 뜻으로 사용된 마음 심(?, 心)이 세 개요, 음으로 사용된 단어가 勿(물→홀)과 光(광→황)이다. 이 뜻 또한 가볍지 않아, 勿은 칼로 무엇을 토막을 낸 형상으로 잘게 부서진 뜻이며, 光은 사람이 등잔불을 이고 있는 모양으로 어른거림을 뜻한다. 따라서 홀혜황혜惚兮恍兮는 두 눈을 감아도 등잔불이 어른거리듯 흐릿하고, 미묘한 것이 떠 올라 마음이 하늘에 붕 뜬 상태를 말한다.

내 아껴두었던 일을 마음껏 하고 숨겨두었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고자 스스로 ‘true color 3.0시대’라 명명한지라, 그 여정을 살펴보니 자화자찬 진정 그리하여 ‘惚兮恍兮’로 지었다.

사람은 참으로 묘하여 노닐고 놀았던 기억은 소복이 쌓이나 돈 벌려 한 기억은 보람이 되어도 밑바닥으로 사라지는 법, 이는 재미가 들어 저절로 그러함에는 옳고, 그른 시비(是非)가 사라지는 참으로 묘한 본성에 기인한다. 남들은 추운 겨울밤 험한 산속 오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을 ‘미친 짓의 억지’라고 여기겠지만, 스스로 그러한 재미에서 발현된 일이라면 힘듦이 행복으로 바뀌는 오묘함을 먼저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

나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이미 3GO를 생활신조로 삼아 “먹고 죽자, 놀고 죽자, 쓰고(돈, 글) 죽자”를 만천하에 알려, 내 스스로 도망가지 못하게 퇴로를 끊었고 가족들 또한 가장(家長)의 뜻이 그러함을 은연중 압박하여 이제는 당연히 그러함이 되도록 만들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惚兮恍兮한가?

차마고도 <사진 윤일원>

그의 실증적 증거로 안동 겸암정사 요강 체험(1월), 포르말린 뿜어대던 안동병원 간병(2월), 매화 향기 가득한 천년 고찰 화엄사 홍매화(3월), 진달래 흐드러지게 핀 고려산(4월), 꿈인가 생시인가 영실기암(5월), 물길 따라 떠난 동강(6월), 부친 기일 날 온 가족 어머님 추모(7월), 꿈에도 어른거린 차마고도(8월), 도봉산 Y계곡과 안성 바우덕이(9월), 언어의 축복 감꽃당(10월), 노자 책걸이(11월), 연암당 송년회(12월) 그리고 내일(12.31.) 부산 태종대 낙조이니, 이 또한 그러하다.

오호라, 맨날 놀고 먹고, 먹고 노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꼭 치열한 삶이 있어야 한다고? 언빌리버블! 나무 하나 없고 유적지 하나 없는 초원에서 바람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말발굽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창칼이 부딪쳐 사람이 짓이겨지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진정 놀 줄 안다고 말하리라.

그런 것처럼 누런 황금 낱알만 있었던 안성 들녘, 달랑 두 줄기 강물만 있었던 아우라지 강가는 말할 것도 없고 광화문에서 창의문으로 끝나는 북악산 성곽길이라면 2박3일을 논해도 진정 못다 한 이야기가 더 많아야 제법 논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난 진정 3일만 버틸 수 있는 젬병.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로 4일은 일해야 하는 모순. 내 그 4일 동안 부국강병의 게임체인저 기획, AI시대의 인간 본성 탐구, 국가 혁신 2.0거버넌스 구상으로 채우리라.

말로만 그렇게 했다고, 올해 내가 페북에 포스팅한 글이 336개로 ‘좋아요 41,770개, 댓글 3,566개, 공유 1,027개’를 받았으니, 한 달에 이틀을 빼고 맨날 글을 썼다면, 참말로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이란 아궁이 가마솥에 달라붙은 숯 검불 같다. 처음에는 하늘하늘 불김에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오래 지나면 단단한 숯검댕이가 되어 칼로 긁어도 떼어내기 힘이 든다. 한번 잘못 세팅된 것은 죽어도 모르니, 일년에 한번 섣달 그믐날이라도 성찰하여 리세팅(resetting)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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