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돈이 없어도 할 수 없는 일?

우리가 매일 아침 맞는 해돋이는 무위(無爲) 즉 강요됨 없이 ‘스스로 그러함이 된 영역’이 아닐까. 사진은 필자가 2024년 1월 1일 인왕산 범바위 아래서 찍은 일출 장면이다. 

어제는 사촌 동생의 아들 결혼이 있어 부산으로 가는 KTX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대생답게 무엇을 분석할 때 사분면四分面으로 사고하면 생각이 선명하다. 돈을 좌측에 놓고 우측에는 일을 두고, 다시 각각에 유(有), 무(無)를 둔다.

그러면 근사한 사분면이 만들어진다.

1)돈으로 할 수 있는 일
2)돈으로 할 수 없는 일
3)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4)돈이 없어도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첫 줄 첫 번째 칸(돈有, 일有)는 엄청 많다. 대다수가 여기에 소복이 쌓였다. 그렇다. 그래서 열심히들 일한다. 자본주의는 돈을 매개로 다른 서비스로 순간이동이 되게끔 만든 구조이니 그렇다. 보기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 그런 품목은 넘쳐난다.

남미라면 돈으로 ‘사람 죽이는 일도 너무 쉬운 일일 것이다. 새해 첫날부터 험한 이야기를 했다고 나무라지 마시라. 그만큼 돈을 존중해서도 안 되지만, 경시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칸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첫 줄 두 번째 칸(돈有, 일無)은 좀 생각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일. 그렇다. 그때 우리 집은 돈도 없었지만, 서울대에는 못 들어갔다. 돈이 있다 쳐도 못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였을 거다. 이 칸은 능력에 해당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많은 일 중에 내가 능력이 없어 못한 것들, 행위가 없으니 빈칸이다. 그래서 ‘강요무위’ 칸이라고 명명했다.

두 번째 줄 첫 번째 칸(돈無, 일有)은 또 순식간에 채워졌다. 나의 3GO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봉사, 선한 일, 감사, 사랑도 마찬가지다. 물론 푼돈도 돈이라 여기면 윗줄로 가야 하지만, 그 정도는 제외하자. 돈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것들, 무지 많다. 또 인문학 지식으로 무장하고 혼자 놀다가 심심하면 더불어 친구와 같이 놀아도 좋다. 나만 내공이 있다면 무한대로 확장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유희끝판’ 칸이라고 명명한다.

두 번째 줄 두 번째 칸(돈無, 일無)는 한참을 들여다 봤지만 여전히 빈칸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돈도 필요 없고, 행위도 없는 공간. 도대체 이 영역에 들어갈 것이 세상만사에 있기는 할까? 오호라, 문득 이 공간이야말로 내가 목표로 하는 ‘본지풍광(本地風光)’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족소유(知足逍遊)’, “족함을 알면 노닐게 되어 놀게 된다”의 칸이라고 명명했다. 근사하지 않은가? 맨날 놀 궁리만 하니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들은 1)돈으로 할 수 있는 일 2)돈으로 할 수 없는 일
3)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4)돈이 없어도 할 수 없는 일을 각각 바로 위 사분면에 채워넣으면 어떨까? 

그리고 보니 무위(無爲)가 두 종류로 확연히 나뉜다. 아무리 애써도 능력이 안 되어 빈칸이 되는 일. 이건 사회가 나에게 ‘강요’로 만들어진 일이니 내가 사회생활을 한다면 공동체를 위해 참아야 하는 일이다. 마지막 무위(無爲)는 강요됨이 없는 ‘스스로 그러함이 된 영역’이다. 어쩌면 채워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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