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겨자씨의 한탄 “본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박지원은 유한준(兪漢雋)과 약속이 있어 개성 근처 용수산(龍樹山)에서 날이 저물도록 기다렸지만, 끝내 그가 나타나지 않아 편지를 보낸다. “강물은 동쪽으로 흘러들지만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이슥하여 달빛을 받으며 돌아오는데, 정자 아래 늙은 나무가 하얀빛을 띠며 사람처럼 서 있더군요. 또 그대가 저기에 먼저 와 있구나 의심했지요.”
이 편지를 받아본 창애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에 대한 나무람이 한 문장이라도 들어있었다면, 그 나무람이 기다림을 보상하고도 남아 연암을 더 몹쓸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역시 고수들의 글은 서운함을 뛰어넘는 운치와 여유가 있다.
일전에 지인들과 광화문에서 사직단으로 와 인왕산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창의문에서 빠져 백사실 계곡으로 갔다. 창의문에서 백사실로 가는 길은 차도와 인도가 겹쳐 자주 뒤돌아봐야 하는 구간이며, “경치 볼래, 차 조심할래?”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요즈음 서울에는 주요 간선도로로 진입하는 작은 골목길 지선에도 신호등이 설치된 곳이 많다. 우리 일행은 주고받은 이야기가 복싱 선수 못지않게 다양하고 많아서 이야기에 심취하기 일쑤라 무심코 건넜는데 중간쯤에서 빨간불로 바뀌었다. 차도에서 뛰어 건너는 것은 더 위험하여 그냥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살금살금 건넜는데, 늦게 출발하게 된 운전사가 ‘빵빵’거리면서 경적을 마구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짧은 순간 내 마음은 ‘미안함’에서 ‘디스’로 확 바뀌어 ‘사람이 지나가면 아무리 차도라도 사람이 우선인 선진국 교통문화를 언제 배우려나!’ 하면서 운전사를 나무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오호라, 그렇구나. 미안함이 들게 하려면 이미 엎어진 물 조금만 기다렸으면 내내 미안함을 갖고 그렇게 기다려 준 운전사에게 감사함을 간직했을 텐데, 이미 내게 ‘빵빵’ 경적을 울려 분노를 표출했으니, 내 미안한 맘은 빵빵으로 보상이 다 끝났고, 나도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 그를 다시 비난하게 되는구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 겨자씨다. 이처럼 작은 겨자씨에도 염치와 의리가 있다고 경계한 옛사람의 글이 한 무더기가 넘을 만큼 많은 것을 보면 “한 터럭에 바다를 삼켜도 바다의 본성은 줄어들지 않고, 겨자씨를 아무리 바늘에 던져도 바늘 끝의 예리함은 변함이 없다”는 어느 선사의 말처럼 이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은 본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날처럼 가득한 날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