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이승만의 ‘건국전쟁’은 팩트, 재해석은 될지언정 소멸되진 않을 것”

3.1절 105돌 되던 지난 1일 <건국전쟁>을 보았다. 한번도 졸지 않고, 하품조차 없이,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내 당신을 이제야 품었습니다. 꽁으로 날로 먹고, 너무 늦게 찾아온 나를 용서해주시오.” 고향 친구의 작은 모임 하나를 만들어도 성가신 일이 천지 빛깔인데, 하물며 한 나라를 건국하는 고뇌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그렇게 혼자 그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고, 조국에 버림받아 죽어서야 고국 땅을 밟은 그 외로움이 오늘날 우리에게 이토록 풍요를 가져다준 고마움을 앞서기 시작했다.

역사는 모름지기 팩트의 진실이 생명이다. 진실이 주는 감동이 허구를 파괴한다. <서울의 봄>이 허망한 픽션의 감동이 있었다면, <건국전쟁>은 팩트가 주는 강한 힘이 있다. 강한 힘은 오래가고 쐐기가 된다. 왜냐고? 팩트는 ‘재해석은 될지언정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우남(雩南)이여. 내 글깨나 쓴다고 하면서도 아직 당신을 위한 글 한편을 남기지 않은 부끄러움으로 가득했다. 당신을 옹호하면 4.19운동의 독재자와 전쟁 때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지도자를 옹호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두려워해서이다. 애써 팩트에 대한 자기검열이라 변명하지만, 진실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진 이들의 비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그러지 않으리다.

한반도에 자리잡은 우리 민족은 늘 중국 다음으로 잘 났다는 자부심으로 5천년을 버텨왔다. 그런 민족이 일본에 한껏 자존심 구겨진 일이 발생했으니 바로 식민지다. 이 식민지를 어떻게 해석할지와 독립운동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두 가닥의 거대한 흐름으로 나라는 두 쪽으로 갈려졌다. 한쪽은 이상파요, 다른 한쪽은 현실파다.

군국주의화된 일본제국, 물경 700만 대군에 맞선 몇백명의 독립군, 그들의 형세는 거대한 수레에 맞선 사마귀처럼 위태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해석하면 현실파요, 그래도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우리가 해방되었다는 자위론(自慰論)을 선호하면 이상파가 되었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 현실에 따라 해방은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도둑처럼 몰래 찾아왔지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생 독립국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이상파와 현실파의 인식도 확연히 달랐다. 이상파는 곧 죽어도 통일이요, 현실파는 군사화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반쪽 나라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이상파는 대륙주의요, 현실파는 해양주의였다.

하지만 주어진 문제지는 냉혹했다. 공산주의 선호도가 75%인 좌경화된 신생 독립국가, 1인당 GDP 66달러인 가난한 신생 독립국가, 국민 문맹률 78%인 근대화되지 못한 신생 독립국가, 전 국민 소작 비율이 65%에 머문 불평등의 신생 독립국가, 대륙으로 이어진 700만 대군이 뒷받침하는 나라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신생 독립국가.

이상파의 우두머리인 백범은 북한으로 건너가 통일의 환상을 부르짖었지만, 바라본 실체는 소련의 야욕에 물든 김일성의 음흉한 속내였다. 하지만 현실파의 우두머리인 우남의 비전은 단호했다.

저절로 대륙의 중력에 끌려 들어가는 신생독립국을 바라볼 수만 없었다. 단호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자본주의”, 이것이라야 했다. 오호라. 이렇게 낯설고 이질적인 문화와 정치체제를 도입한다고? 북한은 착착 군사 강국으로 거듭나는 중에 남한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북한의 공작으로 드러난 제주 4.3사건과 여수 반란사건. 이 와중에 강대국의 전유물인 자유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신생독립국가에 가당찮은 일인가? 맞다. 맞아! 이것이 신생 독립국가의 거대한 비전이다. 더구나 낯설기 그지없는 해양문화와 접속해서 무엇을 얻는단 말인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이는 우리가 해양문화로 접속했을 때 폭발했던 과거 역사를 훤히 꿰뚫어 보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통찰이었다. 우남은 91.8%의 절대적 지지로 정권을 잡은 다음 명료한 전략을 실천했다. 우선 교육이다. 전 국민의 문맹을 없애지 않고는 근대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신생독립국가 예산의 25%를 먹고 사는 일이 아닌 교육에 쏟아부었다. 스스로 자각하지 않는 근대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국가 생존문제의 해결이었다. 강대국의 힘을 빌려오되 종속되지 않을 방법, 그것은 계약을 신성시하는 해양국가의 우두머리와 군사동맹을 맺는 일이다.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었던 신생 독립국가를 지켜주는 일은 군사의 ‘힘’이 아니라 언제라도 약속을 이행하는 종이 위의 ‘계약’이었다.

그 일의 성사는 우두머리인 미국의 전략과 의사결정 과정을 훤히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때론 완고한 민족주의자로, 때론 반공주의자로, 때론 반일주의자로 변신하면서 조국을 위해 갖은 술수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현실파의 지상과제인 가난을 해결하는 일은 우남의 농지개혁과 거대한 전략보다 정교한 디테일이 필요한 일이라 훗날 깡마른 혁명주의자, 반공주의자, 실용주의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1953년 8월 8일 아침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변영태 외무부 장관(왼쪽)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했다.

왜, 우리는 여태까지 뜬금없이 우남을 죽여야 했을까? 우남을 죽여 우리가 얻고자 했던 이상(理想)은 무엇인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민주주의 가치 실현인가? 아니면 공산화되지 않은 자유국가 실현인가? 그것도 아니면 풍요로운 자본주의국가 실현인가? 여기에도 해답은 없는 듯하다.

그저 이상파 민주화운동권의 풋내기 같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놀아났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 이제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시점이 아닌가? 거기에 덫 씌워진 프레임이 반일과 독재라는 사실, 그리고 끊임없이 외치는 ‘원인 없는 결과 중심’의 국가희생자 프레임, 여기에도 이상파의 우두머리인 북한에 대한 비난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더 깜놀이다.

설마 절대지존은 북한 김일성밖에 없다는 생각은 아닐 터? 초중고 도서관에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삼부자 얘기가 등장하는 책(230종류)이 우당의 책(96종류)보다 2배 이상 더 많이 비치된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참으로 우리는 뭔가를 잊고 살아온 사람 같다.

취임 선서하는 이승만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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