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진짜지식 가짜지식 감별법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은 찹쌀가루로 반죽하여 숙성한 다음 기름에 튀겨 부풀린 후 물엿이나 조청에 쌀가루를 입혀 커다란 누에고치처럼 만든 과자다. 겉모양은 깨끗하고 아름다워 먹음직하게 생겼지만, 속이 텅 비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고, 잘 부스러져 방안이 온통 쌀가루로 뒤덮여 여간 고생스럽지 않은 과자다.

소셜미디어가 난무하는 시대,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시대, 자기가 쓴 글인지, 퍼온 글인지. 퍼온 글에 몇 자 덧대어 자기 글처럼 행세하는지,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시대다.

어떻게 하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은 한 것일까? 뒤섞인 시대에 원본이 존재하기는 할까? 원본이 없다면 진실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진짜와 가짜의 민낯은 드러날 수는 있을까? 모두 인터넷이라는 밝은 세상 아래 숨겨진 다크 웹(Dark Web)에서 온갖 지저분한 막장 드라마를 꿈꾸나 보다.

퇴계 이황 선생

1570년, 한국 지성사의 위대한 스승인 퇴계(退溪) 선생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제자에게 이런 유언을 했다고 한다. “평소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제군들과 종일토록 강론한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얼마나 멋진 자기 고백인가? 퇴계 선생의 권위라면 ‘아니면 아닌 것이 되고, 맞으면 맞는 것이 되는’ 그런 분이 임종을 앞두고 자기 견해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고 고백하니 정말 대단한 겸손이며 진정으로 학문하는 태도다.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막스 플랑크는 독일 전 지역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는데, 어디에 초대되든 자신의 이론인 양자물리학 개념에 대해 똑같은 강연을 했다. 3개월간 20회 이상 강연이 반복되자 운전사도 내용을 다 외우게 되었다.

어느 날 교수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본 운전사가 말했다. “교수님, 뮌헨에서는 교수님 대신 제가 강연을 해보면 어떨까요? 강연 내용은 전부 외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질문도 대부분 똑같으니 들킬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교수님은 청중석 맨 앞자리에 제 운전사 모자를 쓰고 계십시오.”

그리하여 운전사는 박사급 이상의 수준 높은 청중 앞에서 양자물리학에 대해 긴 강연을 했다. 그런데 강연 끝 무렵에 한 물리학 교수가 뜻밖에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운전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뮌헨처럼 발전된 도시에서 그처럼 단순한 질문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제 운전사도 대답할 수 있으니 그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지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진짜지식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생각하고 연구하고 체험한 노동에서 나온다. 수많은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다져진다. 진짜 고수다.

또 하나는 일명 가짜지식, ‘운전사 지식’이다. 운전사란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사람을 말한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포장하기 좋은 시대에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 클릭 몇 번만으로 근사한 지식인으로 둔갑할 수 있다.

<천자문>에 이런 말 있다. 제51구 ‘堅持雅操(견지아조), 好爵自?(호작자미)’, “바른 지조를 지키면, 좋은 벼슬이 저절로 얽어맨다.”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정보의 비대칭은 언제나 존재한다. 알려라. 송곳이 되었다고 하여도 저절로 드러나는 법은 없다.”

위런 버핏은 투자에서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대부분 사람은 어떤 범위 안에서는 전문가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 범위 바깥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익히 보는 MC, 뉴스 아나운서, 대변인 등은 번지르르한 말을 잘 쏟아내지만, 사실은 작가들이 써준 말을 읽는 사람이다. 진짜지식을 갖는 사람과 혼동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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