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시선] 제도의 남자, 본능의 여자

우리 인간 종족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말이 호모 사피엔스지만, 그 외에도 호모 크레안스(기획하는 인간), 호모 이그난스(불을 다스리는 인간), 호모 쿠란스(달리는 인간)…(중략) 이 중에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따른 신체적 구별은 있을지언정, 정신적 능력을 의심하는 구별은 없다. 아마 노자가 구태여 ‘남녀(男女)’로 표시하지 않고 ‘자웅(雌雄)’으로 표현한 것에는 이런 뜻이 있을 듯하고, 그래야만 “천하의 계곡이 된다”는 메타포가 성립된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아담과 이브(페테르 P 루벤스 작품)

요즈음, 동양 고전의 수신제가의 도리를 인용하여 삶의 지표로 삼으려는 글이 넘쳐난다. 이는 그만큼 살만하다는 증거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 철학적 질문에 답을 하려는 자세로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동양철학이 서구의 대항해시대 계몽주의를 거치지 않아 다소 편협함을 이해한다면 더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

우선 동양 고전에서 말한 인간의 인식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의 인식 세계는 은하의 세계인 초 거시세계와 바이러스의 세계인 초 미시세계가 있고, 그 가운데 인간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인식 세계가 있다. 동양에서 말한 ‘천지인(天地人)’의 인식 세계의 하늘은 우리가 두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하늘의 별과 해, 그리고 달이다. 또 땅은 걸어서 실증한 대륙과 그 주변의 영토이며, 인간은 막 춘추시대를 벗어나 전국시대로 들어갈 즈음의 인간성이다.

이제 인간은 초 거시세계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주인공인 별과 해, 달에서 지구의 정확한 좌표다. 지구는 우리 은하계의 변방에 있는 평범한 행성이다. 우리 은하계는 1,000억 개의 태양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주에는 1,000억 개가 넘는 은하가 있다. 우리 은하계인 미리내(Milky Way)는 그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라니아키아(Laniakea)라는 10만 개 은하로 이루어진 은하계 변방의 작은 은하일 뿐이다.

이제 인간은 초 미시세계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피부 혹은 체내에 거주하는 미생물총(microbiora) 숫자는 대략 100조 개이다. 대부분 세균이라 불리는 박테리아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 말고도 바이러스, 곰팡이 같은 균류(fungi), 원시세균(Archaea)도 있다. 이렇게 우리 몸에 거주하는 미생물의 유전자(DNA) 수는 대략 440만 개나 된다. 따라서 인간의 유전자(DNA) 21,000개와 더불어 우리의 몸을 이끌어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유전자(DNA) 숫자 관점에서 불과 0.5%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을 구성하는 남녀, 그 이전에 암컷과 수컷의 ‘자웅(雌雄)’이라는 근본 뜻을 이해해야 한다.

자, 두 눈을 감고 노자가 인식한 천지인 세계, 태초의 지구를 상상해 보자. 왼편에 태양이 떠 있고 오른편에 지구가 있다. 지구의 크기가 태양의 100만분의 1이라는 것만 이해하고, 이제 태양과 지구 한 가운데 긴 장막이 있어 햇빛을 가렸다. 지구는 한 줌의 빛도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 잠겼다.

이제 장막 한가운데 구멍을 뚫어 한 줄기 빛을 지구에 비춘다. 그제야 지구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듯 온갖 사물이 드러난다. 하늘과 땅, 바다, 산, 강, 들, 시내, 나무, 꽃, 식물들. 세월이 흐르자 꼬물거리는 동물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드디어 인간도 등장한다. 그러자 보이는 세계인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갖 구조물이 존재하고 보이지 않은 세계인 온갖 도덕, 사상, 문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다시 장막 한가운데에 열렸던 구멍을 막아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이제, 우리는 이 사고(思考) 실험에서 어떤 인식 변화를 겪었는가? 태초의 빛, 밝음(白)이 있기 전의 어둠(黑)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고 인식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너와 나는 물론, 삼라만상 그 무엇도 식별되지 않는 고요한 침묵 노자의 표현 대로 혼돈의 세계다. 이제 한 줄기 빛이 들어오자 무릇 사는 모든 것에는 암컷(雌)과 수컷(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번식이다.

번식을 위한 암컷과 수컷이 벌이는 향연,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협력하고, 경쟁하고, 상생하고, 파멸하는 온갖 앙상블로 이루어진 세계,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다. 그 한가운데 좀 더 유별난 것이 인간이다. 왜냐고? 무리 지어 군집생활을 함으로써 다른 종과 다르게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뚜렷한 신체 변화는 직립보행과 배란 일을 숨기는 행위였고, 정신적으로는 뚜렷한 서열 의식이다. 영화로움(榮)과 욕됨(辱)도 그중 하나며 최상위의 내면 의식 세계를 표현한다.

노자는 ‘知其雄(지기웅), 守其雌(수기자), 爲天下谿(위천하계)’, “그 수컷을 알아 암컷에 머물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인간은 제도의 남자와 본능의 여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던 군집에서 수천 명, 수백만 명, 수억 명에 이르는 군집으로 변하게 되자, 수컷은 제도의 남자로 변했고, 암컷은 본능의 여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수컷을 남자라 하고, 암컷을 여자라 부르면서, 군집을 전쟁하기 좋은 조직과 다스리기 좋은 조직으로 칼질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드러난 실체, 여자의 이름이 사라지고 없다. 영빈 이씨(1698~1764), 사도 세자의 친모로 영조의 후궁이다. 정성왕후 서씨(1692~1764), 영조의 첫 번째 왕비로 자식을 낳지 못했다. 태어났으나 이름이 사라진 존재, 바로 여성이다.

왕비도 이러할진대 일반 백성은 말해서 무엇하리오? ‘여모정렬(女慕貞烈), 부창부수(夫唱婦隨), 입봉모의(入奉母儀)’, 여자가 지켜야 도리로 자리매김을 당하자, 여자는 배워서는 안 되는 존재, 성 선택을 당하는 존재로 전락했지만, 여성이 갖는 본능인 성 선택의 전략만은 억압하지 못했고 오히려 더욱 내면화되어 남성을 지배하는 세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 인간 종족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말이 호모 사피엔스지만, 그 외에도 호모 크레안스(기획하는 인간), 호모 이그난스(불을 다스리는 인간), 호모 쿠란스(달리는 인간), 호모 코쿠엔스(요리하는 인간), 호모 베네볼루수(배려하는 인간(, 호모 리투알리스(의례하는 인간), 호모 심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 호모 스칼펜스(조각하는 인간), 호모 스피리투알리스(영적인 인간), 호모 콘템플란스(묵상하는 인간), 호모 도메스티칸스(교감하는 인간), 호모 코무니칸스(더불어 사는 인간), 그리고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인간)도 있다.

이 중에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따른 신체적 구별은 있을지언정, 정신적 능력을 의심하는 구별은 없다. 아마 노자가 구태여 ‘남녀(男女)’로 표시하지 않고 ‘자웅(雌雄)’으로 표현한 것에는 이런 뜻이 있을 듯하고, 그래야만 “천하의 계곡이 된다”는 메타포가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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