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 칼럼]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퍼레이드 현장 ‘소회’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에서 사열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군통수권자의 불끈 쥔 주먹이 늠름하다 <사진 윤일원>

어제 26일은 종일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 남산에 올라 성곽 사이로 핀 구절초를 보고, 한강을 앞에 두고 북악산, 인왕산, 낙산에 둘러싸인 서울 모습을 봤다. 그리고 슬금슬금 내려와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걸으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연신 인왕산 위 비구름만 쳐다보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 되자 늘어진 몸을 이끌고 광화문에 도착하니 오후 2시 10분,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러 ‘활옷’을 구경하면서 찬란한 우리 옷 문화를 즐겼다. 그리고 고궁을 빠져나와 폴바셋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를 텀블러에 주문하고 기다린다.

군사경찰의 시가행진 <사진 주성하 기자>

드디어 오후 3시 20분에 이르자 의정부 발굴터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세종대로로 접근한다. 웬걸, 경비가 이렇게 삼엄하다니, 중국 공항에서 경험한 듯한 체험을 한다. 경찰이 일일이 가방을 뒤지고, DSLR에 담긴 사진까지 확인한 후, 아껴두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버리라 한다. 나는 휴대용 금속탐지 장비로 내 몸 구석구석 탐지를 마친 다음에야 겨우 통과됐다.

사진 윤일원

하늘에서는 비가 이렇게 주룩주룩 많이 내리는데 텀블러 커피 물이 얼마나 된다고 쏟아붓게 하는가? 그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길가에 늘어선 관중보다 경찰과 헌병, 경호 요원이 더 많은 상황을 연출하니, 확실히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 가운데 무인잠수정의 위용 <사진 윤일원>

내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살펴보니, 회사(국방부)에서 관객 동원 겸 주무부처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 프레스터센터 근처 어딘가에서 태극기를 흔들라는 지엄한 명령을 받고 차출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처럼 자발적으로 회사에 하루 휴가를 신청하고 나간 적은 없었다.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기념 국군 태권도 시범단 시가행진 <사진 윤일원>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안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가설이 맞다. 우리가 1인당 GDP를 아무리 높게 만들어도 군사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토와 인구를 생각하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군사 강대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고, 그나마 한시름 놓을 위치인 바다 건너 일본이 버티고 있다. 

광화문 동아일보 고층에서 내려다 본 시가행진 <사진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맞다. 아무리 ‘같은 민족끼리’를 주장하지만, 정치 주체가 엄연히 다르면서 위협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기습할 수 있는 전략 무기를 갖추고 있다면, 평화적 통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3대 세습체제라는 독특한 정치환경으로 광화문에서 아무리 북한을 자극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벌여도, 3대 세습체제는 깃털 같은 위기 정도로도 여기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강국이 맞고, 우리의 강역을 끝없이 앗아간 나라도 맞다. 지난 5천년 동안 우리가 그들의 강역이 되지 않은 것을 하나님에게 감사기도를 드려야 할 만큼 아슬아슬한 역사현장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경험치를 갖고 바라본다면, 그렇게 쪼그라들 일도 아니다.

일본에서 지도를 펴놓고 대륙을 바라보면 한반도가 일본열도 한가운데를 단도처럼 찌르는 모양이라, 대륙이 강성할 때는 본능적으로 안보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일본의 안보 위협을 달래주면서 대륙 군사강국에 균형을 맞출 유일한 전략이 한미일 군사동맹이다.

어설픈 전략이라고? 중국 위협을 느낀 베트남이 자국 영토에 미국 항공모함을 가져오려고 협상하는 현실을 보고도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는가? 또 자국 내 미군을 철수시킨 필리핀의 남사군도의 서러움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나는 이 전략을 통일 이전에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일 되면 주변 강국은 반드시 병력, 탱크, 미사일, 잠수함, 전투기 등 자국이 위협되지 않을 만큼 협상 테이블에 가져온다. 이런 협상이 마무리되어야만 통일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 핵도 통일 되면 우리 것이 될 것인데 뭘 걱정하느냐고 한가한 소리를 하는데, 핵이 있다면 절대 통일은 불가능하다. 1,000km 떨어진 북경에 핵 한 방이면 중화민족이 소멸하는데, 중국이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절대 믿을 수 없다.

요즈음 국뽕처럼 들리지만, K-POP 못지않게 인기 많은 것이 K-방산이다. 첨단을 달리는 미국을 제외하고, 미국산은 너무 첨단이라 자국 플랫폼에 적용하기가 불가능하여 재래식 무기 플랫폼 전 라인업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방산업에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혹자는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 수출에 ‘K-방산’까지 붙이는 일에 적의를 드러내지만, 그것은 군사력의 양면성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전쟁은 패권을 가진 강대국이 물러나 힘의 공백이 생길 때 엇비슷한 군사력을 가진 두 나라 사이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지정학적 발칸’이 되지 않으려면 강한 힘을 가져 ‘전쟁 가능한 나라’가 될 때 안보 위협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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