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건국·건군·육사와 홍범도 장군, 그리고 군의 ‘정치적 중립’

이슈1
대한민국 건국일
: 1919년 3월 1일? 또는 1948년 8월 15일?

[아시아엔=박영준 전 육군사관학교 교수, 육사 56기] 건국일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국민적 합의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1919년 3월 1일’과 ‘1948년 8월 15일’이라는 주장으로 크게 나뉜다.

일부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일제 치하에서의 ‘기미독립삼일운동’을 기념하여 1919년 3월 1일을 건국일로 삼자고 한다. 즉, 삼일운동의 효시가 된 기미독립선언이 있었던 날이 건국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보수 진영인 이명박 정부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건국 60주년 행사를 한창 준비 중이었을 때, 이에 반대하기 위한 진영 논리에서 시작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초대’ 보수 정권인 이승만 정부에서도 1919년 3월 1일을 건국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를 1919년 ‘건립(建立)’하였으며, 1948년 ‘재건(再建)’하였다고 제헌헌법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한편, 보수 진영 대다수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받아들인다. 임시정부와 신탁통치는 정부의 요건을 완전히 갖추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실효적 통치와 국제적 승인 등 여러 측면에서 정식 국가로 보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최초이자 정식으로 사용했다.

1948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서 우리나라가 합법 정부로 국제적 승인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삼는 것은 1919년 3월 1일 주장이 대두되기 전까지, 대다수의 국민들이 큰 문제없이 인정하여 온 바이다.

첫 ‘진보’ 정권인 김대중 정부에서도 1998년 대한민국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로 보았기 때문이다.

종합한다면 1919년 3월 1일은 정신적 측면에서, 1948년 8월 15일은 실체적 측면에 각각 무게를 두고 건국일로 주장하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생각들은 이미 우리의 헌법 전문에 녹아 있다.

이슈2
육군사관학교 전신 : 신흥무관학교? 또는 경비대사관학교?

1919년 3월 1일을 건국일로 본다면, 독립군·광복군을 마땅히 우리 군의 뿌리하고 할 수 있다. 신흥무관학교를 육군사관학교(육사)의 전신으로 보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자랑스럽고, 감사해야 할 우리의 역사이다.

하지만, 이는 정신적 측면이지 실체적 측면에서는 객관성이 떨어진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을 받은 후, 이를 보위하는 국군을 창설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국군을 창설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군 장교의 요람인 육사의 개교는 있을 수 없다. 정신과 실체 사이의 시차를 극복하지 않는 한 진보측의 주장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 7월 국방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육사는 1945년 설립된 군사영어학교를 모체로 해 국방경비대사관학교, 조선경비대사관학교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정식 출범했다”고 밝혔다. 보수측의 일반적 주장이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본다면, 이번 국방부의 브리핑도 모순일 수밖에 없다. 건국(建國)에 이어 건군(建軍)이 이루어지고, 건군에 따른 사관학교의 개교가 마땅한 순리이기 때문이다. 실체적 측면에서 정부 수립 이전에 개교한 경비대사관학교를 육사의 전신으로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사료에 따르면 ‘경비대(警備隊)’는 ‘경찰예비대(警察豫備隊)’의 준말로 사회의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간부 양성소이기에 군(軍)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일본이 평화헌법에 따라 군대를 보유할 수 없어 자위군(自衛軍)이 아닌 자위대(自衛隊)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경비대사관학교 입교생 상당수가 일본군 출신이며, 초기 국군 지휘부가 일본군 출신이었던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흑역사이다. 이 때문에 신흥무관학교 등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종합하자면, 실체적 측면만을 놓고 본다면 신흥무관학교와 경비대사관학교 모두 육사의 전신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편, 정신적 측면에서는 신흥무관학교와 경비대사관학교 둘 다 육사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도 국군의 지휘부와는 달리 육사 교장에 광복군 출신들을 의도적으로 임명한 것은 육사의 뿌리에 대한 정신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에서 사관생도와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연합뉴스>


이슈3

홍범도 장군 흉상과 군의 정치적 중립

육사의 조형물 설치에는 대원칙이 있다. 바로 육사 혹은 육사 졸업생과 깊은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만년 우리의 역사를 수용하기에는 육사의 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대원칙의 이면에는 軍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내기 위한 깊은 뜻이 있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함께 설치된 4분의 흉상과는 결이 다르다. 홍범도 장군은 신흥무관학교 등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의 공을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한편 세간에 논란이 되는 보수 진영에서의 주장, 즉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문제시 삼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 홍범도 장군의 훈장 추서는 보수 정권인 박정희 정부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일부 단체의 주장에는 불법과 억지, 그리고 가짜뉴스가 있다. 홍범도 장군에게 추서된 훈장을 문재인 정부에서 한 번 더 추서한 것은 위법이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건립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육사 조형물 설립의 대원칙을 흔드는 억지이다. 

마지막으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것인데, 마치 보수 진영에서 홍범도 장군의 공을 애써 깎아내리는 양 흉상을 ‘철거’한다고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도 당부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육사 이전이 큰 이슈였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국방에서 육사가 차지하는 상징성 때문에 한낱 군사학교의 이전으로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센 이전 요구에 서울시와 노원구, 그리고 육사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육사의 태릉 존치를 지켜낸 것은 육사의 독립군·광복군 역사에 대한 포용 덕분이었다. 당시 보수 진영에서의 행위는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하게 말하면 분탕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국은 선거에 의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민주국가이기에 이번 정부도 분명히 끝이 있다. 그 이후에 어떤 성격의 정부가 들어설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스무 살 전후의 우리 사관생도들을 더 이상 진영논리로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성숙한 시민의식과 역사관을 갖고 호국의 간성으로 자라도록 응원하는 것이 사회발전에 훨씬 보탬이 될 것이다. 

West Point(美 육군사관학교)의 학교 목표가 머릿속에 스쳐 간다.

“건전한 시민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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