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용서와 보은’, ‘경쟁과 협력’ 통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바라는 우리 사회의 기대

아시안게임 결승전 전반 시작 직후 첫골을 터트리고 환호하는 일본과 침울한 한국팀, 그러나…

2019년 7월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냉랭해진 한일관계를 반일 시위로까지 격화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한 달이 지나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중심이 되어 저술한 <반일 종족주의>가 출간된다. 반일 감정이 악화된 때에 시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이 책은 단번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다.

언론이나 인터넷 등에서 이 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었다. 진보 진영은 물론이거니와 보수 진영에서도 연일 성토가 이어졌다. 반면, 당시의 소모적 한일정세에 지친 탓인지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분별력을 갖고 살피자는 분위기도 있었다. 시시비비를 떠나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학자정신’을 올곧이 담은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이듬해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는 <매국노 고종>을 과감히 세상에 알린다. 시기와 진영을 불문하고 망국과 식민이 우리 탓이라고 하면 ‘식민사관’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거침없는 난도질을 당한다. 그런데도 반일 감정이 최고조로 달하던 시기에 ‘국뽕’들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금년 초 사석에서 박종인 기자를 만났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사료에 기초한 강한 확신의 매서움은 가릴 수 없었던 듯하다. ‘기자정신’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지성인들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 탓만 하는 소모적 ‘죽창가’에 대한 염증 때문일까? 뚱딴지같은 주장을 통해 남들로부터 주목받고자 하는 관종 때문일까? 전혀 아닐 것이다. 객관적 자기성찰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바라는 기대 때문이다.

잊지 못할 아픔과 잊어서는 안 될 은혜

‘정한론’이라는 실체가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져 무단통치를 통해 온 국토를 짓밟을 정도로 물질적 가치를 훼손했다. 문화통치를 통해 민족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으려 했다. 민족 자체를 말살하려 한 일제 만행을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한다.

오늘날까지도 이를 이어받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도발적 언행이 시시때때로 우리를 자극한다. 하지만, 온 일본열도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는 일본식 장대석으로 둘린 한국식 봉토분이 있다. 인공저수지인 ‘수성못’을 축조한 미즈사키 린타로가 묻힌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농민들의 논에 농수(農水)를 공급하기 위해 사재를 털었고, 임종 직전까지 수성못을 돌보았다고 한다.

2023년 10월 7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조영욱이 역전골을 성공시키자 동료들이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중윤 삼양식품 창업자와 오쿠이 기요스미 일본 묘조식품 사장의 ‘미담’은 자주 회자된다. 꿀꿀이죽 먹는 국민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찾아온 진중윤에게 오쿠이 기요스미는 두말 없이 라면 제조기술을 알려준다. 유일한 조건은 한국에서 배고픈 사람을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들라는 것 단 하나였다. 보릿고개를 잊게 한 삼양라면은 이렇게 출시되었다.

산업의 쌀, ‘제철’에도 진한 감동이 묻어있다. 미국과 독일에서 퇴짜를 맞고 마지막으로 일본에 부탁한다. 신일본제철 기술자는 우리나라와 일본 수습생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았다. 한결같이 하나의 제자로 기술을 가르친다. 드디어 고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다. 이때 한일 기술자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를 껴안고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산업의 초석이 된 포항제철은 이렇게 세워졌다.

일제가 저지른 지난 만행을 잊기는 어렵지만, 우리를 도운 진심어린 일본의 손길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통 큰 용서에서 출발하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에서는 백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주목할 점은 고구려와 신라를 우리 발음과 유사하게 각각 ‘고우구리(こうくり)’와 ‘시라기(しらぎ)’로 부르는 것과 달리, 백제는 ‘쿠다라(くだら)’라고 부른다. 이는 백제를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큰 나라’로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에 큰 나라로 불리던 선조들의 후손이다. 아픈 역사와 도움의 손길 외에 용서는 우리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큰 나라 후손들인 우리의 통 큰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쟁과 협력을 통한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내일

파시즘에 저항했던 이탈리아 역사철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다. 과거사도 현재 상황에 맞게 다시금 해석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미래의 목적과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이다. 자유진영과 시장경제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며,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경제 측면에서 상호의존도가 높고, 안보 측면에서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의 중요한 협력적 파트너다.

지난 7일 토요일 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축구 결승에서 맞붙었다. 손에 땀을 쥐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와 서로에 대한 매너있는 스포츠맨십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한일관계에서도 서로가 경쟁하면서 함께 발전하고, 신사답게 협력하는 미래지향적인 내일을 열어가길 소망한다.

“사람은 100살을 살지만, 1000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삼양식품 창업자 진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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