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사랑하는 자와 이용하는 자

한강은 흐른다. 태고에서 먼 훗날에도…

노판사 특강과 홍범도 흉상, 그리고 육사 교가

지하철을 타고 매일 동호대교를 건넌다. 떠오르는 햇빛에 눈이 부셔 매번 한강 하류가 보이는 좌석에 앉는다. 하지만, 오늘은 한강 상류를 바라보고 앉는다. 저 멀리 서울숲을 끼고 중랑천이 한강으로 유유히 흘러들어온다.

평소 SNS를 통해 꾸준히 교감하는 한 판사님이 계신다. 임기를 140여 일 남겨두고 제2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육사)를 방문한다고 한다. 서울고등법원 강민구 부장판사다. 당연히 함께하고픈 마음에 육사를 지나흐르는 중랑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산적한 일을 마무리했다.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육사를 향해 달리다 보니 차창 밖으로 불암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산꼭대기에 드리운 구름이 한 폭의 그림같다. 지난 시간 이모저모로 불암산을 오르내리던 숱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강민구 판사님은 생도 특강 한 시간 전에 육사에 도착한 듯하다. 법(法)복을 벗기 전 생도들 앞에 서게 된 것을 ‘하늘의 복’(천복)이라고 연거푸 말씀하신다. 1988년 육사를 떠난 이래로 35년 동안 한시도 이곳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강의 시간, 강 판사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려는 듯해 보인다. 강의 내용 외에도 무언가를 귀하게 강조하고픈 모습이 역력하다.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주었고, 모진 시간을 이겨낸 힘을 길러준 곳이 육사라고 했다.

임진왜란에서 결사항전했던 동래부사 송상현의 글(戰死易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을 인용하며 생도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친 한마디에 마음이 울컥한다.

“기죽지 마라.”

홍범도 장군 흉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화랑대를 빠져나오는 길에 여기저기 붙어있는 선동적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이용하는 자’와 ‘사랑하는 자’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문득 육사 교가 한 구절이 떠오른다.

“풍진노도 헤쳐나갈 배움의 전당~~~, 백사고쳐 쓰러져도 육사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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