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정율성 공원’,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1980년 5월 18일, 광주 충장로엔 ‘애국가’ 울려 퍼져
천만 관객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인민군 깃발부대장 진태(형, 장동건 扮)의 마음을 돌리고자 진석(동생, 원빈 扮)이 국군 연대장을 찾는 장면이다. 연대장이 진석에게 질문을 던진다.
“작전을 위해선가, 형을 구하기 위해선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범접할 수 없는 이 영화만의 백미를 한마디로 나타낸 것이다. 이 대사를 “국민을 위한 것인가? 민족을 위한 것인가?”로 바꾸어도 시놉시스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국민’과 ‘민족’ 사이에서 역동적인 현대사를 지내오고 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수학에서의 집합 이론을 잠시 빌려보자. 남한 집합과 북한 집합이 있다. 두 집합의 교집합은 남과 북이 한(韓)민족으로써 공유하는 영역일 것이다. 헌법과 국군의 이념 등에서 평화적 통일을 우리의 사명으로 삼는 마땅한 근거이다.
남한 집합에서 민족을 제외해 보자. 아마도 이 여(餘)집합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만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반대로 북한 집합에서 민족을 제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노동당’이 될 것이다. 두 여집합의 관계는 상호 배타적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내용을 따르자면, ‘인지 혁명’ 덕분에 생각할 수 있는 인간만이 집단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출발은 ‘토테미즘(Totemism)’이라고 한다. ‘토템’이 ‘내 가족’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숭배가 아닌 집단의 형성이 토테미즘의 목적이었다. 한민족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이다.
민족에 뿌리를 둔 일종의 정치이념이 ‘민족주의’이다. 근대에 등장했으며, 이론적 토대가 약하여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한 탓에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무장투쟁과 애국계몽운동 등에서 우리 민족의 저항과 진보를 이끈 큰 등불이 되어주었다. 한편, 나치즘이 아우슈비츠 등에서 보여준 배타적 헤게모니는 광기 그 자체였다. 카멜레온과 같은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민족이 민족주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정체성과 민족주의라는 정치이념은 별개의 차원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갈 책임이 있다. 그것이 ‘평화통일’이다. 민족이라는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며, 배타적 존재인 적대세력들과 타협은 있을 수 없다.
한편, 북한을 포함한 적대 세력들이 감성적 이념인 민족주의에 그들의 이념논리를 희석한 뒤, 민족이라는 숭고한 정체성으로 둔갑하여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한번도 ‘남조선 혁명역량 강화’와 ‘무력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린 적이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광주광역시 ‘정율성 공원 사업’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정 선생은 광주에서 태어난 항일운동가로서 우리 민족의 독립에 큰 역할을 했다. 반면, 한국전쟁에서의 활동은 명백한 적대행위였다. 여기에서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일부에서는 정 선생을 둘러싼 중국 귀화 및 공산당 가입 전력만을 이슈화시켜 논란의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의 본질은 정 선생이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협한 자라는 사실이다. 우리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으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은 부인할 수 없는 주적(主敵)이다. 감성적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1980년 5월 18일, 광주광역시 충장로에 울려 퍼진 <애국가>를 듣고 많은 시민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정 선생이 살아서 애국가를 들었다면 마땅히 분개했을 것이다. 우리도 마땅히 분개할 수밖에 없는 곡이 있다. 정율성 선생이 작곡한 <조선인민군행진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