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어느 재야인사의 박정희 평가

“나는 신을 경애하고, 내 벗을 사랑하고, 내 적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미신을 경멸하면서 죽는다.”(볼테르)

팡테옹은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장되는 국립묘지이다. 이곳에 가장 오래도록 묻혀 있는 사람은 프랑스의 자랑 볼테르다. 평생을 불합리한 권위와 종교의 무자비함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기독교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기독교의 배타성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물리학자인 에밀리 뒤 샤틀레 부인을 만나 수준 높은 물리학과 수학을 접한다. 존 로크와 아이작 뉴턴의 책에 열광할 정도로 이성과 문명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볼테르가 강조한 것은 바로 ‘관용’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타인을 대할 것을 강조했다.

얼마 전 민주화의 큰 발자취를 남긴 한 재야인사를 만났다. 긴 시간 해외에서의 봉사활동을 포함하여 숱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였다.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중공업에서 재화 생산에 필수재인 ‘철강(鐵鋼)’을 생산하고,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류망 확보를 위해 ‘고속도로’를 닦은 것은 박정희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추진한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산업 활동의 핵심은 생산과 거래이다. 비약적 표현이지만, 정보화(Digitization)는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생산하고, 생산된 정보를 인터넷으로 거래하는 소프트웨어 혁신이다. 정보화와 구분하자면, 산업화(Industrialization)는 기계와 분업화를 통해 재화를 생산하고, 생산된 재화를 물류망으로 거래하는 하드웨어 혁신일 것이다. 산업화 성공과 경제성장에서 재화와 물류망을 대표하여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구축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박정희 장군이 등장한 해(1961년) 우리나라 1인당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는 고작 90여 달러 수준이었다. 박 대통령이 서거한 해(1979년)의 1인당 GDP는 1800여 달러에 달했다. 성공적 산업화를 통해 약 20배의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경제 활동을 위해서는 노동, 기술, 자본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었다. 한편 당시에 기술과 자본은 부족(不足)이 아닌 부존(不存) 상태였다. 포항제철을 세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닦기 위해서 당연히 미국, 일본과 손을 잡아야만 했다.

일제의 잔재가 여기저기 남은 터라 일본과 협력하는 것은 크나큰 정치적 부담이었다. ‘한일협정 반대시위’가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미국의 힘을 끌어오는데 쿠데타는 애써 외면하고픈 아킬레스건이었다. 베트남에 간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거나 평생을 불편하게 지내야만 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한 지난한 싸움의 선봉장을 맡았다. 일본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와 가진 여러 차례 회담에서 큰 진척이 없었다. 후방에서 이를 묵묵히 바라보던 박 대통령은 비밀리에 야권 인사를 만난다. 이 만남에서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더 거세게 추진해 주길 부탁했다. 시위가 날이 갈수록 격해졌기에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급했던 일본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177∼178 페이지)에서는 국익을 위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필요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일(反日)이 아닌 용일(用日)을 위해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인정했기에 기록할 수 있는 표현이다. ‘포항제철’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한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 W. G. 브라운이 이동원 외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을 ‘브라운 각서’라고 한다. 박정희 정부가 베트남에 한국군을 추가로 파병하고, 이에 미국 정부가 한국의 경제와 안보 지원을 약속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기업의 출발이 이 서한 덕분이라고 한다. 베트남 파병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있었다. 반대의 무게중심에 당시 야권 대표인 박순천 민중당 당수가 있었다.

한편, 파병이 이루어지면서 박순천 당수는 직접 베트남에 가서 파월 국군을 격려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도록 한목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박 대통령의 모노드라마가 아니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수가 함께 노력하여 이룩한 걸작이다.

필자는 정치철학을 논할 수준이 못 된다. 하지만, ‘진보’는 명칭 자체에서 과학적, 합리적인 느낌이 있다. 사드 배치,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등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틀렸음을 관철하고자 과학을 괴담으로 만드는 것은 진보적 가치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보수’가 종교와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을 존중하고 부족한 자와 나눌 수 있는 것은 보수의 큰 가치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종교의 신성불가침을 도구로 사용하여 상대가 틀렸다고 단죄한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온데간데없다.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로 넘어가면서 산업화와 민주화 두 세력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평생 민주화에 투신했던 거두가 우리나라 산업화의 아이콘인 박 대통령의 공(功)을 긍정적으로 드높인 것에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긴 시간 함께했던 재야인사가 더 위대하게 보였다. 그리고 감사했다.

볼테르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나는 신을 경애하고, 내 벗을 사랑하고, 내 적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미신을 경멸하면서 죽는다.” Agree to Disagree.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