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스마트건설, 국난극복의 산업유전자로 대한민국 제2의 경제도약을
배우 전지현(직녀)과 차태현(견우)이 주연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영화 속의 명대사가 머릿속에 선하게 남아있다.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이다.”
준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우연이 아닌 필연일지 모른다. 영화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분위기와 말미의 여운 때문인지 직녀의 독백은 잊을 수가 없다.
지난 7월 26일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스마트건설 얼라이언스’ 출범식이 있었다. 5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건설업 외에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정보통신산업) 분야 종사자가 거의 절반 정도 참석한 것이 기존 행사와 크게 다른 점이다.
건설과 ICT의 융·복합이 과연 우연일까? 이 어색한 만남은 우리나라 산업에서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다. 새로운 국운을 드높일 하늘이 준 기회, 즉 운명임을 출범식을 바라보면서 가져보았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우리나라에서 건설업은 국가재건과 경제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 나라마다 국운을 살린 저마다의 대표적인 산업이 있다. 우리에게는 건설업이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주었다.
지금은 그 역할이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의 약 15%, 일자리 약 210만개를 담당하는 기간산업의 위치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는 그동안 우리 기업이 쌓아올린 두터운 신뢰 덕분에 오늘날에는 방위산업 등 다른 산업들의 해외진출까지도 견인하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제2의 중동 붐’ 조성을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업이 가져다 줄 직간접적인 경제효과를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덕분이다.
한편 건설업계에서는 이대로 간다면 더 이상의 양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017년 맥킨지(McKinsey & Company)는 건설업이 4차 산업혁명 기술과의 접목이 가장 더딘 탓에 생산성이 가장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는 산업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낮은 성장률에는 뚜렷한 개선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현장에서는 청년들에게 직업으로서 매력이 낮아 근로자 수급이 심각한 수준이다. 안전사고 측면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업을 대상으로만 다루는 법률로 오해될 정도이다. 여전히 타 산업대비 ‘사망 만인율(사망자 수의 만 배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값)’이 가장 높다. 대부분의 산업들에서 추진되는 ESG 구현은 언감생심이다. 가히 위기가 아닐 수가 없다.
1997년 우리는 ‘IMF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 때 ICT 산업은 처참했던 경제위기를 극복케 한 핵심산업이었다. 아울러 새로운 경제성장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주었다. 당시 인터넷 투자와 벤처기업 육성 등 과감한 ICT 산업정책이 경제회복의 원동력이 되었기에 한 때의 건설업처럼 중환자 상태인 우리 경제의 산업심장을 다시금 뛰게 해주었다.
외환위기 당시 인터넷 가입자 수는 약 1만5천여 명, ICT 기업 수는 약 1만여 개였다. 2001년 8월 23일 IMF에서 빌린 구제금융 가운데 마지막 남은 1억4천만 달러를 상환할 때는 인터넷 가입자 수는 약 1050만여 명으로 약 1000배가, ICT 기업 수는 1만3천여 개로 약 30%가 늘어났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기간에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동시에 새로운 경제성장을 가능케 해주었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간산업으로 우뚝 서 있다.
그러나 한 때 세계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했던 우리의 ICT 산업도 위기에 처해있다. 중국과 인도의 추격이 무서운 것은 이미 과거가 된지 오래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무장하여 우리나라를 거세게 공격하고 있다.
공룡기업들의 독과점 구조가 강하여 벤처기업(스타트업)들이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거친 환경을 이겨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의 도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분명 건설과 ICT는 우리나라를 일으키고 번영케 한 대표적인 기간산업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산업 스펙트럼에서 서로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
하나가 파랑이면, 다른 하나는 빨강일 정도로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제史와 두 산업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두 산업이 ‘스마트건설’로 하나가 될 수 있게 된 (우연)은 우리나라에게 (운명)이 놓아준 새로운 경제도약의 (다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스마트건설 글로벌 시장은 연간 16%의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회계법인 EY(Eanst & Young)는 이 시장이 2019년 약 5400만 달러에서 2025년 약 1조 6천억 달러로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건설과 ICT가 만난 스마트건설이 우리나라에 또다른 경제도약의 불씨를 지펴줄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 쉽다.
국토교통부에서는 2018년 ‘스마트 건설기술 로드맵’을 수립하였다. 지난해에는 ‘S-Construction 2030’를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건설 전반의 디지털화, 자동화를 완성하는 청사진이 나왔다.
한편, 해외에서도 스마트건설의 장밋빛 전망을 보고 엄청난 투자와 노력이 진행 중이다. 영국은 ‘S-Construction 2025’를 통해 건설 생산성 강화를 위해 1억7천만 파운드를 투자할 예정이다. 일본은 건설 생산성의 20% 향상을 목표로 ‘i-Construction’을 발표하였다. 싱가폴은 ‘Construction 21 운동’을 통해 건설 혁신을 위한 7대 기술 분야의 로드맵을 수립하여 신성장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잿더미 상태에서 부국강병의 신화를 이룩한 건설 유전자가 있다. 아울러, 중환자 상태에서 세계최강의 산업심장을 뛰게 한 ICT 유전자가 있다. 이 두 유전자가 만난 것이 ‘스마트건설’이기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큰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NBS CEO인 러셀 하워츠(Russell Hawroth)는 “건설에서의 디지털 혁명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출발이 결코 늦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강한 산업 유전자가 있다.
이번 ‘스마트건설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기점으로 건설과 ICT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스마트건설이 더 강인한 유전자를 갖고 다시금 우리 경제를 이끌길 소망해본다. “피는 못 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