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경기북부·강원도 ‘낙석’, 지역사회와 함께 국방혁신 모범 되길

“도로 옆에 무심하게 서 있거나 도로 위를 흉측하게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더미를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자를 도로낙석, 후자를 고가낙석이라고 한다. 통칭하여 낙석이라 부르며, 콘크리트 더미를 폭파한 잔해로 도로에서의 차량 이동을 방해한다. 북한군 전차의 기동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는 장애물이며, ‘서울 요새화 계획’의 하나로 설치가 시작되었다.”

우리 군의 화력 분야를 이끈 예비역 장성 한 분을 자주 뵙는다. 미국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에 많은 도전과 자극을 던져주신다. 하루는 미군 대령의 보수교육에 관하여 들을 수 있었다. 이 교육에는 군사교육이 일절 없다고 한다. 경제경영, 과학기술, 인문사회 등에 관한 식견을 넓히는 교육이 주를 이룬다. 군사 분야 전문가들이 국방을 혁신할 능력을 함양하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기병, 화약, 철갑선, 잠수함, 전차, 전투기, 원자탄, 레이더 등은 전장에서의 혁신을 이끌며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소위 ‘게임 체인저(국면 전환자)’라 불리는 것들이다. 군사 도메인에 군사 외적인 분야의 힘이 더해져 이룰 수 있었던 일종의 ‘창조적 파괴’였다. 전술·작전의 단계를 넘어선 전략·정책의 단계에서 가능한 국방혁신의 선례들이다. 

참고로, 전술·작전 영역에서는 주로 군사 분야에 한정하여 개선(발전)이 이루어진다. 우리 군에서는 전투발전이나 교리개선이라 부른다.

낙석의 운용은 전술·작전의 영역이다. 반면, 낙석의 대체는 전략·정책의 수준이다. 즉, 낙석을 철거한 뒤,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보강하는 창조적 파괴는 국방혁신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도로 옆에 무심하게 서 있거나 도로 위를 흉측하게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더미를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자를 도로낙석, 후자를 고가낙석이라고 한다. 통칭하여 낙석이라 부르며, 콘크리트 더미를 폭파한 잔해로 도로에서의 차량 이동을 방해한다. 북한군 전차의 기동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는 장애물이며, ‘서울 요새화 계획’의 하나로 설치가 시작되었다.

이 계획은 오늘부터 나흘간 진행되는 을지연습과 시작을 함께 했다. 즉, 1968년 1월 21일 북한 국방성(당시 ‘민족보위성’) 예하 정찰국 소속이던 124부대가 청와대 인근 세검정까지 침투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한편, 함께 시작된 주민등록번호, 예비군 제도 등에 비해서 대중에는 덜 알려져 있다.

서울타워, 남산터널, 한남대교, 여의도공원, 북악스카이웨이 등 서울 시민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시설들이 이 계획에 의해 지어졌다. 지금은 당시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사회 인프라가 확장되고 발달하였다. 대통령실까지 용산으로 이전한 터라 이 시설들에게 구축 당시의 관측소, 병참선, 방공호, 활주로, 장애물 등의 기능을 온전히 요구할 수 없다. 아마도 수도 방어를 위한 최소 기능만이 요구되고 있을 것이다.

한편, 강남(압구정동, 신사동, 청담동 등) 한강변 아파트의 총안구, 광화문의 이동형 화단 등도 서울 요새화의 일부였다. 하지만, 현재는 본연의 기능수행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이 시설들이 서울을 지키는 기능을 오늘날까지 수행했다면, 시민들이 겪어야 할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사회적 비용이라고 한다. 다행히 서울을 보호하기 위한 대체 수단, 즉 군사력을 보강하고 운용하는 비용이 사회적 비용보다 훨씬 적다. 이러한 경제성 분석이 서울 요새화에 포함된 시설들에게 더 이상 기능을 요구하지 않는 충분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요새화 계획의 일환인 낙석은 몇 개 정도가 철거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수가 존치되고 있다. 낙석은 도시의 미관을 상당히 훼손한다. 아울러, 도로교통의 안전을 저해하는 주범이다. 고양, 파주, 의정부 등 경기 북부지역에서는 국민 생활권을 침해하는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다행히 낙석에 대한 우리 군의 입장에 많은 변화가 있다. 작전환경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낙석이 설치될 당시에 비해 도로망은 상당히 확장되었으며, 도로의 수준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따라서 군이 처음 계획한 낙석지대를 운용하는 것보다 더 큰 역량을 확보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강이나 대비에는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낙석을 운용할 병력이 충분치 않다. 낙석 운용은 주로 공병(工兵)이 담당한다. 인구절벽은 병력자원 감소를 불러왔다. 이에 따라 지상군 부대 수가 많이 줄면서 부대별 책임구역은 넓어졌다. 자연히 공간의 확장되면서 부대별 담당해야 할 낙석 수는 증가했다. 그리고 낙석까지 이동해야 할 거리가 늘어났다. 하지만, 낙석을 폭파할 병력을 보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끝으로, 변화될 전투의 수행양상에서는 낙석의 효과를 많이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전 초에 벌어질 화력전은 접적지역 일대를 무자비하게 초토화할 것이다. 낙석은커녕 도로도 온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방어를 위한 차단보다 공격을 위한 복구 소요가 더 클 수도 있다. 특히, 상대의 종심을 때리며, 입체적 공간에서 전광석화와 같이 이루어질 미래의 전장(戰場)에서는 한국전쟁에서 보던 선(線) 개념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상황에 맞게 탄력적 운용을 기대할 수 없어 자칫 우리 군의 기동마저도 방해할 우려가 있다. CPX(Command Post Exercise, 지휘소훈련)에서 낙석에 의한 거부작전으로 되레 후방으로 이동하던 아군이 퇴로가 차단되어 고립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군에서도 낙석의 효용성을 반신반의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낙석이 우리 군에게 다소 계륵과 같은 존재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낙석이 존치되어야 한다면 이를 위한 군사적 목적과 지자체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방안은 없을까? 일부 지자체에서는 낙석 본연의 기능은 유지하면서 흉물스럽지 않도록 심미적 설계를 통해 재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낙석 구조물이 차량의 통행속도를 감속시켜 되레 도로교통의 안전을 향상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생태통로, 카페 등 평시에도 낙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성을 개선한 사례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철거가 불가피하지만, 장애물이 여전히 필요하다면 대안은 없을까? 살포식 지뢰와 같은 기동장애물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살포식 지뢰는 장애물 설치가 요구되는 시간과 장소에 융통성 있는 운용이 가능하다. 

특히, 낙석과 같은 고정된 장애물에 비해 살포식 지뢰는 공격자에게 방어자에 의한 설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공자의 행동에 대한 선택 폭을 제한하는 큰 이점도 기대할 수 있다. 살포식 지뢰 외에도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드론이 기동장애물로서의 활용성에 기대가 모이고 있다.

한편 낙석의 운용은 우리나라의 수준에 걸맞게 재검토할 시점이 되었다. 한여름에 냉방을 제한하면 전기요금을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영업이익을 감소시킬 것이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감소한 영업이익과 절약된 전기요금에 대한 정량적 비교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살포식 지뢰, 드론 등과 같은 기동장애물의 전력화를 위한 예산과 낙석의 운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비교하는 경제성 분석이 필요하다. 이 논의를 위한 시기가 충분히 도래했다고 본다. 군사적 비용이 사회적 비용보다 적다면 국방예산에 선도적으로 반영하여 기동장애물을 과감히 전력화시켜야 한다.    

낙석을 철거하고 기동장애물을 전력화는 것은 이제 국방혁신의 문제다. 더 이상 일선 부대의 실무자 수준에서 다루어질 현안 수준이 아니다. 전략·정책의 테이블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 군 지휘부의 책임 있는 혁신을 기대해 본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븐 잡스가 한 말이 떠오른다. “Innovation distinguishes between a leader and a fol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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